|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3 | 4 | 5 | 6 | |
| 7 | 8 | 9 | 10 | 11 | 12 | 13 |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 28 | 29 | 30 |
- 열림터다이어리
- 또우리
-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 자립
- 국제컨퍼런스
- 성폭력피해자쉼터
- 핑체
- 자립홈
- 세계여성쉼터대회
- 생존자
- 또우리모임
- 보리
- 붕붕
- 성폭력
- 성폭력피해자
- 폴짝기금
- 쉼터퇴소인
- 성폭력피해생존자
- 퇴소자
- 열림터
- 소식지
- 친족성폭력 피해자
- 친족성폭력
- 쉼터퇴소자
- 청소녀
- 아동성폭력
- 한국성폭력상담소
- 쉼터
- 캠프
- 또우리폴짝기금
- Today
- Total
열림터
[숙직일기] 먹는 것이 남는 것이다(feat. 남이 해준 음식) 본문

열림터는 생활인들 모두 생활패턴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래서 저녁식사 외에는 냉장고나 팬트리에 있는 식재료로 각자 끼니와 간식을 챙겨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각자 먹고싶은 음식들을 냉장고 보드에 적어두면 활동가가 주문을 해서 곳간을 가득 채워둡니다. 하지만 아무리 산해진미가 가득 채워져 있어도 생활인들은 “먹을 게 없어요”를 외치며 냉장고 문을 닫습니다. (대체 왜인가요? 냉장고 안에 미역국도 있고, 닭볶음탕도 있고, 갈비도 있단 말이에요. 샐러드, 멸치볶음, 김치도 있어요. 근데 왜 먹을 게 없다는 거죠? 엉엉. 활동가들은 항상 이 풀리지 않는 숙제로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그렇게 열림터 부엌을 벗어난 생활인들은 마라탕이나 매운떡볶이 같은 자극적인 메뉴로 외식을 많이 하고, 커피나 빵, 과자같은 부식만으로 끼니를 떼우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다이어트를 한다고, 귀찮아서, 스트레스 받아서 등 갖가지 이유로 아예 먹지 않기도 하고요, 폭식도 합니다. 이런 불규칙한 식생활은 결국 (당연하게도) 몸을 망가뜨립니다. 속이 쓰리고 위장이 아프다고 울상이 되어 찾아오면 활동가들은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죽을 데우고, 약을 챙겨줍니다. 늘 먹는 걱정이 마르지 않는 열림터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비단 열림터 생활인들만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슬프게도 2026년 현재, 도시에 사는 대한민국 10대~30대 1인 가구 및 여성들의 보편적인 식생활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열림터 김치냉장고에는 항상 과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렌지나 체리, 아보카도 같은 수입산 과일도 있고, 제철을 맞은 싱싱한 국내산 과일도 있지요. 상큼 달콤한 과일들은 아무리 먹는 걸 귀찮아하는 생활인들도 쉽게 거절할 수 없는 매력적인 먹거리입니다. 하지만 과일 마저도 스스로 알아서 먹는 것을 기대하면 안됩니다. (대체 왜죠?)
가장 맛있는 과일은, 남이 깎아준 과일이니까요.

요즘 저는 숙직할 때 과일을 많이 깎습니다. 거실에 모여 있을 때 사과를 깎으면 서너개는 후딱 사라집니다. 키위는 막 두세 팩이 눈깜짝할 사이에 없어져요. 어쩔땐 그 속도에 넋을 놓고 기계처럼 과일을 깎는데,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잘 먹는 사람들이라니, 놀랍고요. (띠용!)
어제는 더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저녁식사 당번인 생활인 A가 로제파스타를 만들어주더니, 후식으로 참외까지 깎아줬거든요. 너무 감동적이고 대단한 일이라서 이렇게 숙직 일기에 사진까지 남겨둡니다. (사실 이 감동 참외는 "쌤~ 참외 깎아 주세요"에서 시작된 <과일깎기 스킬 레벨업 프로그램>의 결과물이긴 합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이 길고긴 긴 터널 속에서 불안과 무기력, 우울로 힘겨워하던 이가, 감자칼로 조심스레 참외를 깎아 정갈하게 접시에 담고, 마주앉아 함께 먹는 그 시간이 저에게는 참 평온했습니다. 아삭한 참외가 유난히 달게 느껴졌어요. 이 맛에 활동가들은 오늘도 과일을 깎고, 몸에 좋은 음식들을 주문하는 거겠죠. 언젠가 찾아올 치유와 회복의 과정에서 만날 이런 안온한 순간들을 기대하면서요.
* 이 글은 여름을 기다리며 수박 깍둑썰기를 연습하는 감이 활동가가 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