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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미의 자기방어훈련 후기 : 저항과 거절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 2019. 8. 12. 10:38

자기방어훈련 후기 : 저항과 거절

 

마미

 

열림터에서는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자기방어훈련을 진행했습니다.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Self-Defense)은 성폭력을 비롯한 여성의 몸에 대한 억압에 맞서는 몸-마음 훈련입니다. 열림터 생활인 마미가 자기방어훈련 후기를 전합니다.

 



피해 상황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이, 그때 왜 바로 도망가지 못했냐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영화에서나 드라마에서는 흔히 폭력 등을 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럴 때 주인공은 화려한 발차기나 무술을 선보이며 그 상황을 빠져나간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상 속에 나오는 허구일 뿐, 실제로 일반 피해자들이 저런 무술을 할 수는 없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미리 예고된 상황이 아닌 갑작스럽게 당하는 상태에선 나도 모르게 당황해서 이성을 챙기기 힘들었다. 피해 상황 때도 무차별적으로 날아오는 공격에 무서워 눈을 감고 상대를 피하기에만 급급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전문으로 호신술을 배우거나 교육을 받지 않는 이상 나에게 오는 폭력이 두려워 몸을 숨기려고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 자기방어훈련을 통해 나는 그게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를 알게 되었다. 상대의 눈을 피하게 된다면 날아오는 폭력으로부터 대피하기 힘든 상황이 된다는 것을 이번에 자기방어훈련을 하며 제일 먼저 배웠다. 일단 상대를 보고 대피로를 확보해야 한다는 말이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상대가 다가오려 하면 다가오지 말라며 분명히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이 첫 번째라고 계속 강조하셨다.

스쿨오브무브먼트에서 자기방어훈련을 하는 모습

 

자기방어훈련에서는 가방을 빼앗으려 하거나 앉아있는데 갑자기 다가와선 폭력을 할 경우 또는 머리채 등을 잡혔을 때의 대처법을 단계별로 배워갔다. 정말 피해를 입을 수 있을 만한 상황에 놓였을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동작들이었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동작들이 막 어렵다거나 복잡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다 쉽게 따라 할 수 있었고, 하면서 스트레스도 같이 풀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느낌을 받았다. 각자 어떤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알고 싶은지를 말하면 강사님은 방법을 알려주시며 실제 상황처럼 시범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교육을 받을 때 강사님이 정말 가해자가 다가오듯 진지하게 다가와 주셔서 놀란 나머지 가볍게 하려는 마음은 사라지고 그 시간만큼은 진지하게 임했다. 악력이나 힘의 차이가 선명하게 느껴져서 이것이 훈련이 아니라 실제로 내게 일어난 일 같았다. 그걸 몇 번이고 반복하고 나니 피해 상황 때는 내가 왜 그렇게 바보같이 당하고만 있었나 후회가 되었다. 아무것도 몰랐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래도 왜 이런 걸 일찍 배우지 못했지, 라는 생각에 한없이 아쉬울 뿐이었다.

 

발차기!

 

어느덧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있는 지금 이젠 누가 칼을 들고 다가와도 무턱대고 당하진 않을 것 같다. 상황의 정도가 실제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워낙 그에 비슷한 시뮬레이션을 해본 탓에 폭력이나 다른 걸 당하더라도 얌전히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아마 상대에게 저항거절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이번 자기방어훈련을 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글은 나눔터 84호 열림터 다이어리에 실린 글입니다.

나눔터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소식지예요. 84호 전체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isters.or.kr/load.asp?subPage=310.view&cate1=%BC%D2%BD%C4%C1%F6&cate2=B01&page=1&idx=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