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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어느 성폭력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 를 읽고 본문

열림터가 만난 고민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어느 성폭력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 를 읽고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 2012. 8. 23. 10:45

 

 

 

 

처음 수연의 글을 접했던 것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식지 <나눔터>를 통해서였다. 그것을 알려주셨던 분은 당시 나를 상담해주시던 상담소 선생님이었다. 읽어보면 도움이 많이 될 거라며 상담소 소식지 전부를 찾아서 챙겨주셨다. 그렇게 읽게 된 수연의 글을 통해 나는 큰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그런데 부끄럽지만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 그때 느꼈던 또 다른 감정이 있었는데 세상에 나보다 더한 고통을 겪은 사람도 있다는 알 수 없는 안도감(?)같은 것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들의 순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유치한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지금은 얼굴이 다 화끈거리지만 그 당시엔 정말 그랬다. 너무나 크고 무겁던 나의 고통을 잠시나마 가볍게 생각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제와 이런 부끄러운 고백을 하는 건 수연의 책을 읽게 될 사람들이 나 같은 유치한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더불어 성폭력 피해 생존자를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는 성폭력사건들은 대부분 일반적인 사건이 아닌 특별한 사건으로, 가해자는 특별히 이상한 사람으로, 성폭력은 세상에는 없을 흉측한 일로 보도된다.

그렇지만 실제의 세상은 그렇지 않다. 수연의 글만 보더라도 가해자인 아빠는 겉으로는 평범한 아빠였고 목사라는 번듯한(?)직업도 가지고 있다. (이 부분에서 가해자가 아빠라는 사실에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이다. 목사가 아니라.)

 

그리고 한국사회의 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 때문에, 오히려 수치심을 느껴야 할 가해자는 평범한 얼굴의 가면을 쓰고 뻔뻔하게 잘 살아가는데 반해 피해자는 모든 수치심을 떠안고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이것은 실제 성폭력사건 발생건수에 비해 현저히 낮은 신고율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연의 글이 세상에 나와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모른다. 수연의 글을 통해 우리는 성폭력피해자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접할 수 있다. 당시에 어떤 마음이었는지, 얼마나 황당하게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폭력 사건을 성의 문제로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의 문제로 확실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사회 전체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사실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집에서 탈출하던 날 탔던 택시기사, 신고해주었던 여관주인, 편안하게 진술하도록 도와주었던 형사, 담당 검사, 재판부, 성폭력 상담소와 쉼터 선생님들 등등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 이렇게 수연의 글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성폭력을 이야기 하는 것이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벌어질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무관심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번만 다시 생각해보면 성폭력이 우리의 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매일 사람으로 가득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성폭력사건들, 회사에서, 학교에서 벌어지는 성폭력들을 생각해 보자. 그 안에서 내가 살고 우리가 살고 있다. 내 가족, 내 아이, 내 친구가 성폭력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성폭력피해자의 이야기를 한 수연에게 감사를 보내며, 이 책을 통해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당사자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임을 우리 사회가 분명하게 인식하기를 바란다.

 

여름(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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