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폴짝기금 인터뷰: "할 것이 너무나 많더라구요. 이걸 깨닫고 놀라웠어요" 도전하는 율이
열림터를 퇴소한 사람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2021년 또우리폴짝기금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는 10명의 또우리들이 폴짝기금에 선정되었어요. 기금을 사용할 모든 또우리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답니다.
아홉번째 또우리는 율이예요. 율이도 직장 잘 다니고 있고, 명상 센터도 등록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답니다. 율이는 폴짝기금을 어떻게 사용하기로 결심했는지 살펴보셔요. 열림터 활동가 조은희가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은희: 율이 안부를 나눠줄 수 있나요~
율이: 꾸준히 직장 잘 다니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워크숍도 다녀오고, 커리어 쌓는 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최근엔 발목을 다쳐 잠시 쉬고 있어요. 쉬는 와중에 가보려고 아주 유명한 명상 센터 10개월 이용권을 끊었어요. 이런 걸 해보는 일은 스무살 때 열림터 선생님들이 해준 것 외에는 처음이에요. 도전하는 걸 잘 못 하는데 지난 번에 은희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해봤어요. 6월부터 다닐거예요. 그 외에 남친과 만나면서 약간 심리치료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은희: 어떤 점이 심리치료 같은지 얘기해 줄 수 있어요?
율이: 남자친구가 핸드폰만 보고 나에게 집중하지 않으면 나를 좀 봐달라고 떼를 쓰곤 했어요. 그럴 때 남자친구는 ‘그런것 하는 것 아니지~’라고 웃으면서 말을 해요. 집에 돌아와서 그런 상황을 생각해보는데요. 아기들은 자기 상태가 안 좋을 때 울어서 소리를 내는 것처럼, 저는 결핍이 있을 때 떼를 쓰는 것 같더라구요. 남자친구가 저의 그런 점을 꼬집어 주기 때문에 제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런 게 마치 심리치료하는 것 같아요. 가끔 제가 핀트가 나가서 불같이 화를 낼때도 조용히 알아차리게 얘기해주고요. 나를 돌아보게 해주어 좋은 것 같아요.
은희: 폴짝기금을 접하고 어떤 생각을 했어요?
율이: 사실 처음에는 내가 뭘하고 싶은지, 뭘 배우고 싶은지 생각을 못하겠더라구요. 나는 필요한게 없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돌아보니 필요한게 되게 많더라구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 같아요.
폴짝기금 신청서를 보기 전에는 TV에서 연예인들이 이것저것 많이 배우는 걸 보면서 '어떻게 하고 싶은게 저렇게 많을까?' 생각했는데... 신청서를 받고 생각해보니 나는 뭘 하겠다고 찾아보지도 않았고,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하고 싶었던 걸 스스로 묻어두었단 걸 알게 되었어요. 할 것들이 너무나 많더라구요. 이걸 깨닫고 놀라웠어요.
은희: 율이가 써준 폴짝기금 계획서를 봤어요. 이렇게 계획한 이유가 있나요? 가장 해보고 싶었던 걸 쓴건지?
율이: 사실 쓰고 싶은 게 되게 많았는데요. 지금 가장 빨리해야 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치과를 적었어요. 내 돈으로만 치과 치료를 받기는 힘들기도 하고, 또 무섭기도 하죠. 아픔을 피하고 싶어서 미뤄왔던 치과 치료를 더 늦기 전에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외에 수영도 하고 싶었는데 코로나로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어요.
은희: 또 다른 것은 뭐가 하고 싶었어요?
율이: 남자친구가 제 신청서를 보게 되었는데요. 제가 영어를 포기했다고 적었더니 '영어를 왜 포기했어?'라고 물어보더라구요. 영어는 나에게 너무 큰 산이에요. 사실 초등학교 책도 사보고 했는데 잘 안되더라구요. 열림터에 있을 때 소은 선생님이 많이 도와주셨던 기억이 있네요. 그 선생님 안부도 궁금해요.
은희: 맞아요. 나도 궁금한데 요즘 연락이 안되고 있어요. 로스쿨 다니셨는데 변호사님이 되셨겠죠!! 연락 한 번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자원활동 오래 해주셨는데... 연락되면 같이 한번 보도록 합시다. 영어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꾸준히 장기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지금도 늦지 않은 것 같아요. 사실 나도 잘 안되지만... 기초부터 눈높이 같은 학습지로 천천히 시작해보는 것도 방법인 것 같아요.
율이: 눈높이? 그거 좋을 것 같네요. 한번 시도해 봐야겠어요.
은희: 천천히 욕심내지 말고 10년 뒤를 생각하며...
은희: 열림터를 퇴소한 다음 자립하면서 좋았던 점과 힘들었던 점은 뭐였어요?
율이: 좋았던 점은 나만의 공간이 있는 것, 그게 최고죠! 힘든 것은 되게 많았어요. 돌아갈 데가 없는 것, 내 소유의 집이 아니니까 경제적으로 힘들 때 막막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만약 열림터에 안 왔으면 저는 강아지... 유기견처럼 뜰창 안에서 구조되어 입양이나 병원으로 보내지내는데, 저한테 열림터란 보호기관은 그 중간지점 같았어요. 세상을 넓게 보게 해준 곳인 것 같아요. 여러 직업이 있고 세상이 넓다는 것을 알게 해줬죠. 그렇지 않았다면 아주 좁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살았을 거예요.
은희: 시설을 퇴소한 성폭력피해자에게 필요한 것은 뭘까요?
율이: 돈보다는요. 직업을 좀 더 다양하게 알 수 있거나, 취직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센터 같은 곳이 필요한 것 같아요. 한정적인 것 말고 다양한 것. 손재주가 없거나 몸을 못쓰는 사람들도 일할 것을 찾을 수 있게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것을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공인중개사 시험 같은 건 전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 다양한 것들을 알려주는 곳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주거지원도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열림터 퇴소하고 주거지원시설로 갔었는데, 그런 곳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래도 운이 좋았죠. 열림터 살 때 요리도 해보고 했는데 식사당번 같은 게 많이 없어졌다는 얘길 들었어요. 좀 1 아쉬워요. 살면서 기본지식을 배울 수 있는 열림터면 좋겠다 싶어요.
은희: 그때 요리했던 게 도움이 되었어요?
율이: 그때 해먹었던 음식만 먹고 살고 있어요. 그런데 안 좋은 점이 있는데요. 요리를 소량만 하는 게 어려워요! 얼마전에 곰국을 끓이는 32cm 솥을 사왔어요. 열림터에서는 여럿이 먹다보니 지금도 대용량만 요리 할 수 있어요. 또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구요. ㅎㅎㅎ 그 솥에 가득 요리해서 혼자 오랫동안 퍼먹고 있어요.
율이가 한 솥 가득 만든 요리가 뭘지 궁금하네요. 열림터에서의 기억이 지금 율이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기쁠 것 같아요. 율이의 치과치료 도전도 응원합니다!
열림터 생활인의 치유회복과 또우리들의 자립을 지원하고 싶다면?
- 생활인들의 저녁 일정이 많아지며 식사당번제도를 폐지했는데요,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서 식사당번제도가 부활했답니다. '오늘은 내가 뭘 만들어보겠다!'하고 요리의 혼이 넘치는 날도 있고, ' 아 다 귀찮다, 반찬만 꺼내둘게' 하는 날도 있지만 다 같이 밥도 먹고, 기본 요리 하는 법을 스스로 익혀보는 시간을 갖는 중이란 것을.. 이 자리를 빌어 율이에게 알려드립니다 ^^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