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폴짝기금 인터뷰 : "해보면 좋지 않을까"-열심히 달려온 나를 위한 힐링 여행을 계획한 에리
2023년 4회 또우리폴짝기금 프로젝트가 진행 중입니다.
자립의 과정을 겪으며 떠오르는 경험과 변화하는 마음을 담은 또우리들의 목소리를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올해는 15명의 또우리들이 폴짝기금 프로젝트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 첫번째 인터뷰는 에리입니다.
사회인의 모습으로 만난 에리는 현실적인 자립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나눠주었습니다.
에리의 인터뷰를 공유합니다.
🧙수수: 저 감기 걸려서 코 훌쩍훌쩍거리는데 이해해주세요. 첫 번째 질문입니다. 에리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에리: 미용실 일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작년말부터 현장 실습 나가서 올해초에 정직원으로 입사했어요. 고생 많았고 현장 실습할 때도 퇴사각 재고 있었는데, 지금도 너무 힘들어요.
🧙수수: 그렇군요. 눈에 약간 생기가 없네요. 어떤 점이 제일 힘들어요?
🐝에리: 현장 실습 때는 하루 8시간 일을 했거든요. 근데 지금은 10시에 출근해서 8시에 퇴근을 하니까, 근무 시간이 더 길어졌어요. 주 5일 일하긴 하지만 쉬는 날도 정해진 게 없어서요. 막내에서 벗어나기까지는 한 1년 정도 남았을 거 같네요. 체력에는 자신 있었는데요. 어우, 못 해먹겠네요.
🧙수수: 미용사들은 다 그렇게 힘들게 일해서 그 자리까지 가는 거군요. 예전에 폴짝기금 인터뷰했던 또우리 중에 10년 차 미용사가 있었거든요. 그 분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군요.
🐝에리: 맞아요. 저는 아직 어려서 이제 막 시작한 거니까요. 그리고 예전에는 더 심하게 일했죠. 어우, 저는 사회인이 되다 보니까 발랄함이 없어졌어요. 발랄함은 필요 없어요. 저 고1 때부터 일하기 시작했으니까, 오래 됐죠.
🧙수수: 사회인의 비애로구나. 일한 지 정말 오래 됐네요. 지금 자취하고 있죠? 혼자 살아요? 혼자 사니까 어때요?
🐝에리: 집에서 학교가 왕복 5시간 거리라서, 오가는 게 너무 힘들어가지고 자취했던 거란 말이에요. 솔직히 한 두 달은 좋았어요. 그 다음은 너무 힘들었어요. 혼자 있는게 제일 좋았죠. 아무 잔소리 없이 나 혼자 생각하는 게 너무 좋았거든요. 친구들도 불러오고. 근데 이게 한 세 달째 되니까 너무 힘든 거예요. 내가 월세도 내야 되고 밥값도 내가 내야 되고 이러니까 너무 지치는 거예요. 할머니가 자취 초반에 두 달 정도 월세를 도와주셨지만, 그 이후에는 제가 다 했죠. 저는 학창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그때가 더 힘들었거든요. 학교 갔다가 쉬는 시간도 없이 그냥 바로 알바 가고 그래서요. 밤 10시에 끝나고, 주 6일 일했거든요.
🧙수수: 에리가 열림터에는 중학생 때 있었는데, 지금과 비교하면 그때 정말 어린이였군요.
🐝에리: 하하, 그렇죠. 그렇게 자취 시작했다가 몇 번 이사하고 지금은 경기도로 갔어요. 서울은 너무 힘든 거예요. 교통이 편안하고 좋긴 하지만, 제가 작년에 면허를 땄거든요. 와, 가끔 차를 빌려서 타고 이렇게 다니다 보니까 좀 힘든 게 없지 않아 있는 거예요. 너무 막히잖아요.
🧙수수: 멋있네요. 저는 아직 면허가 없는데. 경기도로 이사하면서 월세는 좀 저렴해졌나요?
🐝에리: 당연하죠. 진짜 물가 차이가 너무 심한 거예요. 서울에서는 만만치 않았어요. 미용실도 전에 다니던 곳은 텃세가 심했어서 집 근처로 옮겼어요.
🧙수수: 착착 차근차근 많은 걸 하고 있네요.
🐝에리: 어우, 하지만 직장이라는 건 못 해먹겠어요. 아기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때는 부모가 다 해주잖아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필요 없어요. 전 아기가 될래요.
🧙수수: 하하. 다음 질문도 있어요. 에리는 앞으로는 어떤 집에 누구랑 같이 살고 싶어요?
🐝에리: 할머니랑요. 아파트는 좀 그렇고 그냥 주택에서 같이 살고 싶어요. 할머니는 제가 자취하려고 할 때 도와줬거든요. 학교가 너무 머니까 고1 때 자취하려고 했었거든요. 엄마는 반대했었어요. 제가 남자친구랑 같이 살까 봐요. 근데 솔직히 왕복 5시간은 너무하잖아요. 일어나서 첫 차 타고 학교 가서, 집올 때는 막히니까 3시간 걸리고. 고1 때는 온라인 수업도 해서 괜찮았는데, 1년 버텼더니 이제 맨날 학교를 가는 거예요. 방학이 너무 그리워지고 학교 가도 수업시간에 자고 막 이렇다 보니까 일상생활이 안 되는 거예요. 주말에도 쉬지를 못 하구요. 계속 자야 되고. 그래서 할머니도 진지하게, 엄마한테 비밀로 하고 자취를 도와줬어요. 보증금도 도와주시구요. 그때 제가 돈이 어딨겠어요. 이사 갈 때도 도와줬거든요. 직접 할머니가 와서 제 명의로 집 계약할 때 보호자 동의해주고 그랬어요.
🧙수수: 할머니는 에리를 믿고 도와주는 사람이구나.
🐝에리: 맞아요. 아직은 제가 뭐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월세 내고 핸드폰 요금 감당하기가 너무 힘드니까요. 좀 더 커서 같이 살아볼까 해요. 헤어 디자이너가 되면 그래도 수입이 늘어나니까요.
🧙수수: 그때 되면 꼭 알려주세요. 머리 자르러 갈 테니까.
🐝에리: 다 그 얘기를 해요. 전 그럼 아주 비싸게 받을 거예요.
🧙수수: 그럼 멀리서 지켜만 봐야겠네요. 앞으로도 계속 미용사 일을 하는 게 목표인가요?
🐝에리: 네, 해외에서는 펌이랑 염색, 커트를 나누어서 하는데 한국에서는 다 해요. 저도 다 하게 되겠죠. 아직 커트는 아직 안 배우고 있고, 펌이랑 염색은 하고 있어요.
🧙수수: 이제 본격적으로 폴짝기금 질문을 할게요. 이번에 폴짝기금 프로젝트를 처음 알게 되었나요?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에리: “이게 뭐지?” 하하. 저는 바빠서 계속 여기 놀러오지도 못했잖아요. 그리고 신청하라고 해서 했죠. 해보면 좋지 않을까 해서요.
🧙수수: 맞아요.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보탬이 되면 좋겠어요. 에리가 신청서를 열심히 써줬는데요. 폴짝기금으로 “쉬지도 못하고 열심히 달려온 나를 위한 힐링 여행”을 갈 거라고 하셨네요. 어디로 가시나요?
🐝에리: 여수요. 일단 힐링을 하고 싶어서요. 여수 밤바다! 원래 부산 갈까도 고민했는데, 친구랑 갔던 적이 있어서 안 가본 곳을 가려구요. 일단 모찌를 사 먹을 거예요. 딸기 모찌가 유명해요. 그리고 여수 아이스크림 있거든요. 여수당이라고. 그거 먹고 루지 타러 갈 거예요. 게스트하우스도 대충 알아는 봤어요. 제가 아직 근무 일정이 안 잡혀 있어서 확실히는 아니지만요. 여행에 대해서는... 일단 저 먹을 거 밖에 생각을 안 하고 있어요. 친구랑 갈까도 고민되는데, 일정 맞추기가 힘들어서 얘기해 보고 있어요.
🧙수수: 그 정도면 아주 구체적인 계획인걸요.
🐝에리: 근데 만약에 폴짝기금을 받았는데, 근무 일정이랑 엇갈려서 여행을 못 가게 될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되면은 어떻게 하면 되나요?
🧙수수: 일단 에리가 여수당을 먹어야 되니까 여행을 가면 좋겠네요. 그렇지만 만약에 못 하게 되면 여행 말고 다른 하고 싶었던 걸로 쓰셔도 돼요.
🐝에리: 놀러 가고 싶어요. 하루 쉬니까 당일치기도 괜찮겠네요. 어우, 여수 여행 정말 가고 싶어요.
🧙수수: 그럼 다음 질문입니다. 에리가 중학생 때 열림터에 왔다가, 다시 퇴소하고 집으로 잠깐 돌아갔다가 그 다음에 바로 자취를 한 거잖아요. 자립을 하신거죠. 아까 조금 얘기해주시기도 했지만, 자립하며 가장 좋았던 게 뭔가요?
🐝에리: 자립하면요. 친구들 마음대로 만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원 없이요. 막 새벽에 잠깐 우울할 때 친구 불러서 잠깐 얘기하고요. 집에 일찍 들어오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요. 아니면 친구 불러서 재워도 되고요. 내가 돈 내고 사는 내 집이니까, 아무도 뭐라 할 사람도 없고요. 원래 집 같으면 허락 받았어야 됐는데, 자취한 후로는 내가 재우고 싶으면 자고 가라고 할 수 있어요.
🧙수수: 자립하면서 이건 제일 힘들다, 어렵다 생각한 건 뭐예요?
🐝에리: 일단 돈 나가는 게 너무 많아서 다른 걸 할 수 없었던 거요. 월세, 수도, 도시가스, 전기요금 이런 거 있잖아요. 못 해도 100만 원은 잡고 들어가고, 거기서 100만 원 정도는 식비로 쓰게 되고요. 200만 원을 버는데 이것도 저것도 해결해야 되다 보니까 좀 힘든 것 같아요. 먹고 싶은 것도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은데 말이에요. 그래서 친구들이 가끔 부러워요. 쟤네는 부모님이랑 같이 사니까 생활비를 안 내도 되잖아요. 하지만 저는 엄마랑 다시 살고 싶지는 않네요. 절대로 지금이 좋아요.
🧙수수: 그러고 보니 에리가 지금 막 성인이 된거죠? 아유, 시간 참 빠르네.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열림터는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같이 생활하게 공간이잖아요. 이렇게 쉼터에 있다가 퇴소하는 생존자들한테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에리: 돈? 일단 열림터는 나간다는 건, 혼자 살 자신이 있어서 나가는 거잖아요. 근데 돈이 없으면 솔직히 아무것도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500만 원은 있어야 보증금 넣을 수 있죠. 월세는 보증금에서 까든지 아니면 집 계약하자마자 알바를 하던지 해야 되는 것 같아요. 별다른 준비 없이 그냥 열림터에 더 있고 싶지 않다고 퇴소하면 조금 힘들 거예요. 혼자 살기 위해 퇴소하는 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라고 생각해요. 친구 이런 거 필요 없어요. 현실적으로 삶을 생각하면요. 제가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자취하면서 사회 생활하면서 느끼기엔 그래요. 핸드폰 요금이 얼마나 빠져나가는지, 그런 사소하게 생활하며 쓰이는 돈을 생각해 보면 한 달에 200만원도 턱없이 부족한 것 같거든요.
🧙수수: 저도 현실적으로 돈이 진짜 중요한 것 같다고 느껴요. 그런데 일하기 어렵고 당장 보증금도 마땅히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에리: 그러면 단기 쉼터 같은 곳에 잠깐 하루라도 머물면서, 단기 알바를 하길 추천해요. 하루 종일 일해야 하지만, 10만 원 정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렇게 식비만 쓰고 벌면서요. 지방이나 경기도권으로 이사하면 되게 싸게 살 수 있거든요. 원룸인데 보증금 100만 원에 저렴한 월세로 살 수 있으니까. 한 달 동안 악착같이 벌면 자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수수: 그렇군요.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건 힘을 모으는 것과 비슷하네요. 그 다음에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현실적이란 의견으로 들려요.
🐝에리: 맞아요. 친구들은 그 다음에 만나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저도 친구가 많았는데, 요즘은 친구들과 쉬는 날이 겹치지 않아서 잘 못 만나네요. 주말에 손님이 많으니까 저는 평일에 쉬거든요. 조금 속상한 거 같긴 해요. 친구들하고 놀고 싶은데 왜 나는 못 놀지? 다들 주말에 영화 보고 사진 찍고, SNS에 올리는데 왜 나만 일하고 있지... 싶기도 하죠.
🧙수수: 에리는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소위 어른이 된 거잖아요. 오래 살진 않았지만 다양한 경험을 했구요. 다른 친구들이 나중에 에리처럼 일할 때, 에리는 또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거예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빠른 것 아닐까요?
🐝에리: 그렇죠. 근데 뭔가 친구들이 ‘쟤는 왜 혼자 저렇게 급하게 가지? 뭐가 그렇게 급해서?’ 이럴까 봐 조금 걱정이긴 해요. 저한테 자격지심을 느끼는 친구들도 있거든요. 제가 자취하는 것까지 싫어하구요. 그런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는 것 같아요.
🧙수수: 왜 남이 자취하는 걸 싫어할까? 에리는 그게 좀 신경 쓰여요?
🐝에리: 하하, 바빠서 잘 만나지도 못하는데 괜찮아요.
🧙수수: 하하, 그래요. 그럼 괜찮은 걸로. 그러면 우리 인터뷰는 여기서 끝납니다. 사실 열림터도 생활인들이 안정적으로 자립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쉼터에서 나가면 집도, 돈도 있어야 하고. 하고 싶은 것도 있어야 하고, 친구도 있어야 하는데... 이게 모두 자립의 하나인 거잖아요. 쉽지 않잖아요. 열림터가 다 해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까, 가끔 이렇게 꽁돈같은 폴짝기금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돈으로 그동안 많이 신경쓰지 못한 나에게 좋은 거를 하면 좋겠다는 마음. 그래서 에리가 꼭 가고 싶은 여행 갔으면 좋겠어요. 혹시 여행 못 가더라도 에리만을 위한 무언가에 이 돈을 썼으면 좋겠어요.
🐝에리: 책을 사는 거처럼요? 좋아요. 저도 여행 가고 싶어요.
🧙수수: 네, 그럼 진짜 마지막으로. 오늘 인터뷰를 한 문장,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뭘까요?
🐝에리: 음.. 자립을 위해 도와준다!
🧙수수: 네, 감사합니다.
열림터 또우리 지원사업은 모두 열림터 후원금으로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