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림터

"성폭력피해자가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열림터'가 살아가는 이야기(1) 본문

열림터가 만난 고민들

"성폭력피해자가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열림터'가 살아가는 이야기(1)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 2011. 7. 23. 10:35

이 글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와 함께 기획하여 일다에 게재된 글입니다.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인 ‘열림터’ 활동을 시작한 지 3개월, 쉼터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쉼터는 어떤 철학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쉼터 활동가들은 어떤 고민과 고충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번 쉼터 유람을 해 볼까 합니다. 쉼터에 오기까지 여성들이 겪는 폭력과 상처, 쉼터 안에서 복작복작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쉼터를 둘러싼 사회적 조건의 문제까지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바로 제가 일하고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입니다. 열림터 원장이신 송미헌 선생님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 양모펠팅 하는 열림터 친구들     © 열림터
-열림터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려요
.

 
“열림터는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이구요, 전국 19개 보호시설 중 서울에 2곳이 있는데 그 중 하나에요. 1991년 한국성폭력상담소 개설 이후 피해자들이 많은 상담을 하면서 필요성이 제기돼서 만들어졌죠. 가족이나 지역에서 2차 피해가 우려될 때 당장 갈 곳이 없는 피해자들을 위해 94년 전국에서 최초로 개설했어요. 지난 17년간 370명의 피해자들이 다녀갔고 지금도 생활하고 있어요.”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나요?

 
“2010년 기준으로 총 예산의 60프로를 정부에서 지원 받고 있고요, 40프로는 후원금으로 해결하고 있어요. 정부지원금은 활동가 인건비, 시설운영비, 생계비, 의료비, 복권기금(치료회복프로그램) 등이고요. 후원금으로는 일상적인 생활하면서 필요로 하는 지원, 학교생활지원, 의료보호 되지 않는 병원비(성폭력피해 후유증이 아닌 경우)를 써요.

 
수십 명을 양육하는 보육원과는 달리 10인 이하로 규정되어 있는 것은 가정적인 분위기나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게 피해자들의 치유에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시설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보통 대규모를 생각하는데 단순히 먹이고 입히는 것만이 아니라, 이 친구들이 외상도 깊고 사회생활 하는데 어려움도 많기 때문에 일상생활 자체를 치유의 과정으로 보고 한 명 한 명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려고 하죠. 거주지는 주택일 경우도 있고 아파트를 얻어서 하기도 하고 형태는 다양한데, 열림터는 단독주택입니다.”

 

-거주기간은 어떻게 되나요? 입소하는 성폭력피해자들의 연령대는요?

 
“기간은 기본 6개월이고요, 보호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시군구청장의 허가 받아서 1년 6개월 더 연장 가능합니다. 친족성폭력피해자는 만 19세 이전까지 있을 수 있어요. 주로 청소녀들이 많은데 요즘 들어 성인들도 많이 들어오는 추세에요. 성인 입소자의 대부분은 어렸을 때의 친족성폭력 경험이 지금 삶에서 재생되어 우울증이 계속되거나 자립해서 살기 힘든 경우 들어오게 됩니다.”

 
-입소할 때부터 퇴소할 때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입소는 어떻게 하게 되나요?

 
“보통 피해자들이 먼저 전화하는 경우는 없어요. 성폭력상담소나 1366, 해바라기 아동센터, 지역복지관, 학교 선생님, 공부방 등 다양한 경로 통해서 들어오는데, 아이들과 직접 만나시는 분들이 먼저 인지를 하거나 주변 사람들이 거기에 연락을 해서 이 친구가 성폭력 피해가 있다, 가해자와 시급한 분리가 필요하다 하면 입소 의뢰가 와요.

 
그러면 저희가 입소면담을 합니다.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봐야하고, 성폭력피해가 아주 심각한 경우 병원 입원치료가 더 효과적일 경우도 있으니까요.

 
입소하게 되면 그 때부터는 일반 가정에서 하는 것을 다 하는 거죠. 우선은 일상생활을 편안하게 영위하게 하는 것, 가해자로부터 절대적으로 안전하고 의식주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기본이죠.”

 
▲ 여성주의 집단상담 때 열림터 친구들이 그린 그림     © 열림터
-피해자들이 처음에 입소하면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일단 잠을 엄청 자고 많이 먹더라고요. 가해자로부터 안전하기 위해서 첫 2주는 학교 가는 것 빼고는 외출을 못하게 하잖아요. 그 후엔 심리치료도 받고 치유를 위한 본격적인 지원이 시작되는데요, 어떤 지원들을 하나요?

 
“활동가들과 계속 상담하는 건 기본이고, 심리 검사하고 전문가와 연계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받게 해요. 고소를 원하면 경찰, 검찰 수사 과정이나 재판 과정에 함께 하고 변호사를 연계하구요.

 
청소녀들은 학교를 가야 되는데 주소지 이전을 하면 노출의 위험 있기 때문에 학교장 추천 전학으로 주소지 이전 없이 비밀전학을 시키고, 교복도 사고 교과서도 사고 다달이 용돈도 4,5만원씩 주고요.

 
또 중요한 게 가족 내에서 적절한 돌봄과 지원 받지 못하는 과정이 계속되면서 학교 공부는 신경 못 쓴 친구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개개인에 맞게 자원 활동하는 과외선생님을 붙여주거나 학습지를 시키거나 그러죠.”

 

-성폭력 피해자가 살아가기 쉽지 않은 세상이잖아요? 지원하면서 우리 사회의 편견에 맞닥뜨릴 때도 많을 것 같은데요. 어떤 것들이 있으세요?

 
“우리 사회에서 아동, 청소년에 대한 성폭력이다 하면 대부분 조두순 사건, 김길태 사건 등 언론에서 이슈화되는 큰 사건을 위주로 생각하잖아요. 정부 정책들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감시, 통제 위주로 가고 있고요. 그러다보니까 아동성폭력의 절반이 친족성폭력이라는 걸 모르고 있어서 “친아빠에 의한 거다”고 하면 전학 갈 학교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정말 사실이에요?” 이러면서 피해사실을 믿지 못하는 거예요.

 
한번은 아이를 전학시키려고 하는데 이미 가해자가 학교를 찾아가서 애가 가출했다면서 가해사실을 강력 부인한 일이 있었어요. 담임선생님이 가해자 말을 믿어버린 거예요. 예전 다니던 학교에서 추천을 해 줘야 전학이 가능한데 아이가 거짓말 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을 했어요. 또 형사가 와서 “아빠가 안 그랬다는데 얘가 거짓말 하는 것 같다” 이러고요. “어떻게 가족이…….”라는 편견이 많이 작용하는 거죠.

 
보통 학교에 비밀보호 요청을 하고 담임선생님한테만 얘기하면서 이 사실은 최소한으로만 알게 해달라고 부탁을 해요. 그런데 한 학교에서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과잉보호를 하는 거예요. 계속 상담선생님이 상담하고 어떤 경우는 교장선생님이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하겠다하는 데 뜨악했어요. 다른 아이들과 차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좋은데, 특별 관리해야하는 대상으로, 말 그대로 ‘피해자’로 보는 거죠.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나 이해 부족 때문에 이런 경우가 종종 있어요.”

 
-주로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이 많이 오잖아요. 가해자가 가족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피해 후유증이 있을 텐데요. 선생님이 보신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의 특성은 무엇인가요?

 
“친족성폭력이라는 특성 자체가 가정에서의 신뢰를 이용해서 발생하잖아요. 다른 성폭력처럼 처음부터 폭행, 협박을 동반하는 게 아니라, 그런 걸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관심이나 사랑, 놀이처럼 접근을 하고, 피해자들이 이상하고 혼란스러워하면서 시작이 되죠. 점점 신체적인 폭력, 협박을 동반하게 되고요. 그리고 이게 지속적이다 보니까 믿었던 사람한테 당했다는 것에 대해서 극심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되고 대인관계에서 부정적이거나 왜곡된 사고 행동양식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요.

 
일반화하기 조심스러운 건 피해후유증이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인데요, 회복되는 과정도 다르다는 걸 전제로 얘기하면 가장 믿는 사람에 의해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타인을 신뢰하는 게 힘들어요. 신뢰를 형성하는데 굉장히 오래 걸려요. 그리고 상실감이랄까……. 자기 어린 시절을 잃어버렸잖아요. 부모에 대한 상실감도 있고요.

 
자책감도 많이 나타내요. 그 상황을 피하지 못하고 계속 당한 거에 대해 자기도 뭔가 책임이 있지 않나……. 사실 가해자들이 회유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자기도 얻는 게 있고 보상이 있었고 그걸 용인했다는 것에 대한 수치심도 있어요.”

 

-가족에 대한 감정은 어떤가요? 더 이상 피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안도감도 있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있을 것 같아요.

 
“양가감정이 있지요. 아빠라는 존재는 밥을 주고 집을 주고 돈도 주고 때로는 사랑도 주고, 분명 좋았던 기억도 있기 때문에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거예요.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분노도 있지만, 지켜주지 못하고 방치한 엄마에 대한 분노도 커요. 그런 것 때문에 우울해하기도 하고 수시로 울고 감정 조절이 안 되기도 하죠. 물론 개인마다 다르고 또 이런 어려움도 있지만, 이 친구들이 한 달 전과 다르고 6개월 전, 1년 전과 다르고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 회복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죠.”

 
▲ 열림터 친구들과 함께 한 비폭력대화 교육     © 열림터
-열림터는 매일 같이 생활해야 하는 제 2의 가족인데요. 이 친구들이 각자 자기의 상처를 가지고 오기 때문에 같이 살다보면 상처와 상처가 만나고 부딪치고 할 것 같은데……. 자주 싸우지 않나요?

 
“다른 커뮤니티보다는 아이들끼리 더 강렬하게 부딪치고 해소하는 과정도 훨씬 힘든 것 같아요. 사람을 믿기 어렵기 때문에 자주 충돌하고 사소한 일에도 자기가 무시당한다고 느끼고요.

 
계속 우리의 숙제 같아요. 서로 싸웠을 때 각자 선생님이 내 편이었으면 하고 바라고 그 상황에서 선생님이 공평하게 해도 공평하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내 편이 안 되어줬다면서 섭섭해 하고요. 노하우가 많이 필요하죠. 저도 계속 활동하면서 내가 내공이 필요하다는 걸 많이 느껴요. 쉼터 활동이 인간적으로 많이 성숙되길 요구받는 활동 같아요. 심리적이고 영적인 성숙 같은 거? 나 스스로의 부족함에 대해서 늘 성찰을 하게 되죠. 지나고 보면 아쉬운 결정들도 있고요.”

 

-아이들을 보면 대부분 인간관계가 ‘남친’으로 한정되는 것 같아요. 학교 밖이나 주말, 방학 같은 때 학교 친구들을 안 만나더라고요. 사실 자기가 가진 환경이 평범한 게 아니라서 친구들과 이질감을 많이 느낄 테고 그러다보니 잘 못 섞이는 게 아닌가 싶어요. 관계라는 게 세상 살아가는 데 큰 자원인데, 그런 걸 보면 너무 안타깝잖아요?

 
“인간관계 자체가 협소한 경우가 많죠. 쉼터에서 생활한다는 걸 얘기할 수가 없고 대부분 이모네 집이라고 하고 통금시간 있다고 해요. 아주 친한 친구한테도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거짓말을 하는 거죠. 그러다보니 학교에서 피상적인 관계만 맺는 경우가 많아요. 학교 내에서만 끝나는 관계. 학교 밖에서도 관계를 맺는다는 거에 불안함이 있어요. 내 상황을 노출하기에는 낙인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거죠.

 
이성 관계에서는 피해 후유증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어요. 성폭력 가해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관계 유지가 됐었기 때문에 남친이 요구하는 걸 거부하면 버림받는다는 두려움, 특히 성적욕구를 들어주지 않았을 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래서 더 집착한다거나 거부를 못 하는 경우도 있죠.”

 

-치유와 더불어 중요한 게 자립을 위한 지원이겠죠. 언제까지나 쉼터에서 살 수는 없고 언젠가는 나가서 혼자 살아야 하니까. 자립은 어떻게 지원하나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가는 경우 거의 없어요. 대학 가기도 힘들고 등록금을 책임질 수도 없으니까요. 이 친구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립능력을 키워주는 것이죠. 그래서 신경을 많이 쓰는 게 직업훈련이에요. 전공이나 직업을 권할 때 먼저 신경 써야 하는 게 그 친구의 적성, 취미 파악이라고 봐요. 무조건 너는 이거 해라, 이게 돈 많이 벌 것 같다 가 아니라 뭘 잘하는지 뭐가 잘 맞는지 그걸 따져보고 직업훈련 할 수 있게 지원을 하죠.

 
퇴소할 때가 다가오면 3개월 전부터 준비를 해요. 퇴소 이후에 어디에서 누구와 살 것인가, 생활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계획을 상의하고 준비시켜서 퇴소해요. 같이 방을 보러 다니고 부동산 가서 계약서도 같이 쓰고. 냉장고에 식품을 채워주고 취사도구도 마련해 줘요. 같이 장도 보고요. 딸 시집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