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폴짝기금
- 또우리
- 쉼터퇴소자
-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 친족성폭력 피해자
- 성매매청소녀
- 쉼터
- 보리
- 국제컨퍼런스
- 열림터
- 또우리모임
- 성폭력피해자
- 아동성폭력
- 자립
- 성폭력 상담
- 성폭력상담
- 쉼터퇴소인
- 성폭력피해생존자
- 핑체
- 또우리폴짝기금
- 한국성폭력상담소
- 친족성폭력
- 성폭력피해자쉼터
- 새날을 여는 쉼터
- 세계여성쉼터대회
- 붕붕
- 퇴소자
- 성폭력
- 청소녀
- 캠프
- Today
- 16
- Total
- 130,347
목록친족성폭력을 말한다 (18)
열림터

"친족성폭력 가해자 가중처벌 조항 없어…공소시효 폐지해야" "너만 참으면 가정 평안?" 친족성폭력 쉬쉬하는 문화 바꿔야 친족성폭력 상담건수, 1년 평균 4천여 건.. 전체 13% 친족성폭력 사건 특성상 피해기간 길고 2차피해 만연 가족들의 외면 자체가 심각한 2차 피해 '아청법' 시행 된 2013년 이후 사건만 공소시효 없어 피해자들, 참지 말고 신고하고 상담 받아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20~19:55) ■ 방송일 : 2019년 12월 12일 (수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정정희 (열림터 원장) 푸른나비 (친족성폭력 생존자) ◇ 정관용> 친족성폭력 문제. 피해자가 어린 시절부터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 그런 ..
친족성폭력 피해자의 치유를 돕는 ‘길’ ‘친족성폭력’ 이야기(끝)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절실해 공명 친족성폭력 생존자는 낯설고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는 2009년 SH공사로부터 공동생활가정을 무상으로 임대받아 이사를 준비했다. 그러나 새로 입주할 동네의 주민들에게 의 이사 소식이 알려지며, 성폭력쉼터가 혐오시설로 인식되어 주민들이 수차례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 해는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킨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고, 아동성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전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성폭력생존자들이 거주하는 쉼터는 이웃들에게 ‘혐오시설’로 여겨졌던 것이다. 결국 쉼터의 위치가 공개되어, 는 이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쾌적하고 편안한 환경을 기대하던 생활인들의 심리적 스트레스는..
쉼터 퇴소 후 홀로 서야하는 차가운 현실 ‘친족성폭력’ 이야기⑦ 자립을 위한 몇 가지 조건 조화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다’는 수아 수아는 작년 겨울 열림터에 입소하였다. 청소년 쉼터에서 지낸 3년 동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난하게 생활하다, 퇴소하고 1년간 고시원에서 혼자 지내던 수아가 자신의 생활을 꾸리는 것에 어려움을 겪어 다시 열림터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친부의 학대와 성폭력으로 언제 또 피해를 입을까 가해자의 눈치를 살펴야했던 수아는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늘 불안이 있었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눈치를 살피기 일쑤였고,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조금이라도 부정적이면 쉽게 상처받았다. 이 때문에 아르바이트 하는 동안에도 손님이 앞에 서 있으면 긴..
PC방에서 죽도록 검색해 찾은 ‘안전지대’ ‘친족성폭력’ 이야기⑥ 성폭력피해자들이 사는 쉼터 여름 친족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쉼터는 어떤 공간인가 친족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을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2012년 피해자가 직접 쓴 수기집이 출간되었고, 최근에 이라는 영화도 개봉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친족성폭력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가까운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몇 년 전 열림터가 이사하려고 했을 때, 그곳 주민들이 성폭력 피해자 쉼터가 동네에 들어오는 것에 강력하게 반대하여 무산되었다.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는 성폭력 피해자를 쉽게 동정하거나 불쌍하게 여기는 것과 상반된 반응이었다. 그래서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의 삶이 독자들의 일상에 가깝게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생존자들이 일..
피해 ‘이후’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힘 ‘친족성폭력’ 이야기⑤ 피해경험과 함께 살기 향심 ‘피해자는 어떤 후유증을 겪는가’라는 질문 ▲ 은수연의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기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벗어난 뒤에도 기다란 칼이나 화살처럼 내 가슴에 푹푹 박혀 있는 기억들은 계속 예측하지 못한 곳곳에서 나를 아프게 쑤시고 올라왔다.” - 73p. 친족성폭력 피해 경험을 책으로 펴낸 은수연은 성폭력 피해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고통이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생존자에게 남겨진 기억과 감정들은 피해에서 벗어난 ‘이후’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또 다른 고통을 만든다. 흔히 ‘어떤 일을 치르고 난 뒤에 생긴 부작용’(네이버 국어사전)을 후유증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친족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생존자들은..
근친성폭력 피해자가 고소를 망설이는 이유 ‘친족성폭력’ 이야기④ 수사ㆍ재판 과정과 판결 나랑 ‘법도, 경찰도 너를 지켜주지 않을 거야’ “경찰이 너를 찾아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싶니? (…) 아마 너를 죄인 다루듯이 할 거다. (…) 이쑤시개를 씰룩대는 배불뚝이 형사 앞에 앉아, 살면서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부분들까지 전부 까발리도록 강요당할 거다. (…) 몇 시간 후면, 네가 한 말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알려질 테고. (…) 네 말은 한마디도 믿지 않을 판사 앞에서 증언대에 오를 거다. 너같이 더러운 창녀의 말을 누가 믿을 거라고 생각하니? 사람들은 네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챌 테고, 검사는 네가 한 거짓말들을 열거하며 입에 거품을 물 거야.” ▲ 마이테 카란사의 소설 (사계절)마이테..
성폭력보다 무서운 것은 가족의 해체? ‘친족성폭력’ 이야기③ 딸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엄마 여름 아빠가 특별히 예뻐하는 딸 지우(가명)는 세 자매 중 장녀이다.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인 여섯 살 때부터 아빠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아빠는 지우가 건강하게 잘 크고 있는지 확인하는 거라면서 가끔 다른 가족들 모르게 따로 불러 지우의 몸을 살펴보거나 만졌고, 아빠 자신의 몸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빠는 지우를 사랑해주는 것이라 말했다. 지우는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어 무섭기도 했지만, 그런 행동 다음에는 항상 자신이 갖고 싶은 것들을 사주는 아빠를 보며 자신이 사랑 받고 있는 것이라 믿었다. 7살이 된 어느 날, 지우는 엄마에게는 비밀을 만들면 안될 것 같은 생각에 아빠가 자신에게 하는 행동에 대..
가해자는 싸이코패스도, 짐승도 아니다. ‘친족성폭력’ 이야기② 보호자이면서 가해자인 아빠 향심 아빠에 대한 자랑, 어떻게 봐야 할까 열림터에서 일하던 어느 날, 정희의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정희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약 7년 동안 아빠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고, 친한 교회 언니의 도움으로 열림터에 오게 되었다. 당시 정희는 실업계 고등학생이라 전학이 매우 어려웠는데, 담임 선생님이 정희의 피해 사실을 알고 전학 허가가 날 수 있도록 애써주셨다. (실업계 등 사립학교의 경우, 성폭력 피해로 비밀전학을 할 때 교육청의 권유가 있어도 학교장이 거부하면 전학할 수 없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어렵게 전학한 학교인데, 혹시 학교 생활에 문제가 있나 싶었다. 그러나 담임 선생님이 걱정한 건, 학교 생활이..
사람들이 모르는 '친족 성폭력' 이야기 생존자들의 경험과 현실을 이해하기 위하여① 나랑 가해자가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간 정민이 정민(가명)이는 성폭력 피해자 쉼터에서 살다가 작년 초 퇴소하였다. 쉼터에 거주할 수 있는 기간 2년을 꽉 채운 정민이는 퇴소 후 고시원에서 1년을 살았지만, 한 달에 100만원도 채 못 버는 PC방 아르바이트만으로 40만원이 넘는 고시원 비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돈을 모을 수도 없었다. 오빠는 계속 집으로 들어오라고 성화였다. 하지만 정민이는 망설여졌다. 가해자는 아빠였다. 정민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추행을 시작했다.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4학년 때부터 집안일을 해 온 정민이는, 아빠가 자신을 추행한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오빠마저 대학을 다니러 지방..
이 글은 2000년 나눔터(한국성폭력상담소 소식지)에 실렸던 글입니다. 당시 열림터에 살다가 퇴소한 친구가 직접 쓴 일기와 열림터 활동가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유나의 일기 나는 어려서부터 엄마가 싫었다. 엄마가 하는 말과 행동들이 모두 나에게는 악몽이었다. 나는 항상 이런 말을 들었다. "너 때문에 아빠가 죽었다"고. 엄마가 술을 드시고 오는 날이면 항상 나에게 손찌검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사망이후 알콜중독이 되었다. 6살인 나에게는 너무나 견디기 힘든 곤욕이었다. 동네사람들은 나를 오빠네 집으로 보내기로 했다. 오빠의 집으로 가는 날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내 손을 꼭 잡으면서 잘 지내라는 엄마의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중략… 오빠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소름이 끼쳤다. 나는 겁에 질려 있었다. 벌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