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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터가 만난 고민들

여성가출청소년 인권실태 현장조사팀 칠월님 인터뷰 (하)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 2013. 7. 31. 09:47

 

  

 

 

 

-규칙이 일상생활이랑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스스로 뒷정리 하는 게 있는데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거든요. 다른 규칙은 꼭 필요하다고 보는데 귀가 시간만큼은 저도 고민이 많이 돼요. 귀가 시간 때문에 혼낼 때에도 내가 꼰대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고요.

한 쉼터는 귀가 시간이라고 정해 놓은 게 없고, 나갈 때마다 어디 간다고 얘기하고 어딜 가서 누굴 만나고 몇 시에 들어올 지 서로 약속을 하는 거에요. 그리고 약속을 했으니까 지키라는 거죠. 근데 공력이 많이 들어가니까 저희는 엄두를 못 내고 있긴 한데, 바람직한 방법이긴 한 것 같아요.

: 저도 학창시절이나 대학교 때에 부모님이랑 제일 갈등했던 게 귀가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저의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어요. 걱정되겠지, 근데 내가 괜찮다는데, 연락이 계속 되는데......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본인이 납득을 하면 반발이 없을 것 같은데, 사실 7시면 요즘 같은 하절기엔 해도 안 지잖아요.

 

- 열림터에 입소했다가 짧은 기간 지내고 퇴소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소위 ‘센’ 친구들이죠.

그들이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들은 또 센 언니나 오빠들인데 그 관계를 보면 착취적인 관계이고, 맞거나 돈을 빼앗기거나 그러면서도 벗어나질 못해요. 그런 친구들은 규칙에 적응을 못 하니까 결국 빨리 퇴소를 하게 돼요. 퇴소를 하면 어떻게 지낼지 걱정이 되면서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안타까웠고...... 모범생만 지낼 수 있는 쉼터라고 했을 때 그게 제일 뜨끔하더라구요.

: 제가 만난 친구들한테 볼 수 있었던 건 일회적인 만남에 굉장히 익숙해져있는 거에요. 가출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래요. 원가족 자체에 신뢰를 잃은 상태이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서 어떤 사람과 무조건 친해져야 한다는 것 자체가 다른 개념인 거죠. 선생님들이나 일반 교육과정을 거친 사람, 비교적 안전한 원가족에서 자란 사람과 관계의 개념이라는 게 되게 달라요.이들이 어떤 폭주족 언니 오빠들과 있을 때 차라리 더 편하게 느끼는 아이러니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관계’의 개념에 그런 관계가 더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자료집에 나오잖아요.

공동체로서 소속감을 준다는 게, 우리는 운명 공동체고 우리는 다 친구고 우리는 항상 밥을 같이 먹어야 되고 이런 게 그 친구들에게 납득이 안 될 수 있는 거죠, 그 친구들한테는 공동체로서 소속감을 주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 활동가들한테 더 힘든 일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출 팸(패밀리)을 이루어서 살아가는 친구들도 있는데 가출 팸이 소속감을 주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희가 만난 친구들은 하루 하루 살아가는, 내일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친구들이었어요. 연구진들도 멘붕이었죠. 시간에 대한 감각이 너무 다르니까. 우리는 너무 바쁘고 할 일이 많고 압축적으로 사는데, 이 친구들은 그냥 시간이 가기를 바라는 거죠. 시간이 간다고 무슨 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밤이 되어서 자기를 아침이 되어서 좀 따뜻해지기를 바래요. 삶의 시간표가 다른 것 같아요.

 

- 이 연구에서 제시하는 대안이 너무 쉼터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요. 쉼터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쉼터에 너무 많은 책임을 지우는 것이 아니냐, 우리도 힘들다 이런 문제제기는 토론회 때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저희는 오히려 쉼터 활동가들이 개인적인 책임을 많이 느끼는 것이 문제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봤어요. 성급하지만 제가 한 생각은 쉼터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차라리 축소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생활인들이 더 많이 책임을 지게 하는 방식으로요.

무슨 뜻이냐면 ‘유예’라는 개념에 대해서 좀 더 인식을 많이 하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삶은 길고, 90살까지 살아야 되고, 지금은 내가 조건만남으로 한 시간에 십만원씩 벌고 하지만 그걸 몇 년이나 할 수 있는지 그 다음에 다른 어떤 길이 있는지, 그런 것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자면 연구자 중 한 언니가 알고 있는 어떤 친구가 티켓 다방에서 일 했었는데 이제는 남자랑 그렇게 하는 거 재미없다 해서 백화점에 취직해서 열심히 일한데요. 노동자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된 거죠. 그런 식으로 감각이 생긴 거죠, 뭘 하고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을 살 때 이 삶이 지속가능한지, 삶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요. 여성주의적인 의식화가 중요하겠죠.

돈을 벌게 하는 경험을 유도하는 것도 쉼터에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십대 노동권 문제랑 같이 가야 하겠지요. 장기적인 구직까지 지원해야 한다고 봐요. 반드시 밥벌이를 할 수 있게 직업교육 같은 것도 하고요. 귀가를 일찍 해야 한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밥벌이를 네가 해야 한다는 개념을 끊임없이 심어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쉼터가 자신의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활동가가 너무 감정적 책임이나 부담을 느끼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오히려 입소자들이 더 본인의 책임감이나 자율성, 주체성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 청개구리 식당을 운영하시는 선생님이 발표하신 내용을 보니 가출 청소년 문제 해결을 위해선 다양한 대안 가족이 생겨야 된다, 성숙한 시민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국가의 역할보다 지역 공동체나 시민들의 역할 강조하시는 게 상당히 신선하더라구요.

: 그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건 기존 제도권이랑 개념이 좀 다른 것 같아요. 그 선생님은 가출 청소년들에게 집을 마련해줘요. 교회 간사인 활동가랑 가출 청소녀 1~2명을 묶어서 독립된 집을 만들어 주더라구요. 가정을 만들어주는 거에요. 규칙이 있긴 한데 규칙은 스스로 정하고요. 가족이니까 활동가의 엄청난 헌신이 필요한 것 같았어요.

그런데 저 개인적으로는 왜 꼭 가족이 되어줘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가족보다는 독립된 개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게 해 줘야 하지 않나, 또 다른 감정적 책임과 연대를 활동가가 언제까지 책임질 수 있나. 이건 종교적인 신념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 선생님도 이걸 사역이라고 생각하시고 하더라구요.

 

- 열림터에 순한 친구들만 살아남게 되는 게 아닐까 신경이 많이 쓰여요. 활동가랑 갈등을 겪지 않고 규칙을 잘 지키고 많이 벗어나지 않고 그런 애들만 살아남게 되는 것 같아서......

순한 애들만 살아남은 집단에서 ‘센’ 애가 들어오면 이질적이고 튀고 그러면 적응을 못하고 나가는 거죠. 예전에는 다양하게 섞여 있었다면 순한 집단으로 정착하니까 이대로 오래 가더라구요. 오래 가고 안정된 친구들이 있다는 건 좋기도 하지만, 거친 친구들이 오면 튕겨져 나가니까 걱정이 되죠.

그런 친구들을 위한 쉼터는 따로 있어야 할 것 같기도 해요. 누군가는 치료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서 규칙 안 지키고 그러는 걸 성격 장애로 보기도 해요. 뒷 일을 생각 안 하고 지금 거짓말을 한다든지, 그런 행동들이 오래 방치되어서 제대로 사회화되지 못한 사람의 한계다, 그래서 아예 다른 생각을 할 틈을 안 주는 꽉 짜여진, 오도가도 못하는 곳에서 살면서 재사회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해요.

: 그런 게 당연히 쉼터마다 특성이 다르고, 활동가들의 지향이나 성격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아요.

쉼터 안에서 친구랑 활동가가 싸우게 되면 다른 친구들은 그걸 다 지켜보고 있잖아요. 그런 역학관계를 봐야 하는 게 굉장한 스트레스죠. 저는 감정적인 긴장상태가 되지 않게 그런 역학관계를 최대한 줄이는 게 좋다는 의견이에요. 굳이 모든 사람이 저녁을 같이 먹어야 된다는 것도 감정적으로 긴장하게 만들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쉼터 분위기가 건조해질 것 같기도 해요.

: 어떤 프로그램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생활에 있어서는 좀 더 개별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이 두 가지가 어떻게 양립이 가능할지...... 어렵네요.

그리고 정부 보조금이나 후원금으로 지원받을 때 그런 걸 확실하게 인지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게 어디서 나오는 돈이고 이런 걸 주시는 분들이 생활인에게 기대하는 건 어떤 거다. 그거에 맞춰야 한다는 게 아니라 자기의 위치성을 파악하는데 그런 정보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어쨌든 쉼터는 되게 다양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애들이 선택할 수 있게. 근데 그 다양한 쉼터를 누가 만들 것이냐에 있어서 그 주체가 누가 될 것이냐의 문제이죠. 자료집에 보면 대안적인 쉼터를 구상하는 사람들이 그 시도를 할 수 있게 국가가 지원해줘야 한다 그런 얘기도 나오는데 필요한 지원 같아요. 지금의 쉼터들은 관에서 하거나 사회복지 차원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대다수니까. 우리 상담소에서 열림터를 운영하는 것처럼 다양한 단체들에서 시도해보면 좋을텐데, 사실 이게 만만한 작업은 아니니까요.

열림터에는 주로 친족성폭력 생존자들이 들어오는데, 그 가족을 봤을 때 가족의 기능을 하지 않죠.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고 학대하고...... 이게 친족성폭력 생존자들의 가족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이 자료집을 보면서 그게 아니구나, 빈곤층에게는 가족이 더 이상 가족의 기능을 하지 않는구나 싶었거든요.

: 맞아요. 이들에게 쉘터가 과연 있는가, 애들한테 허무감도 많이 느껴졌어요. 당장 죽어도 삶에 미련이 없다는 친구도 있었어요. “언제가 가장 좋았냐”는 질문에 할머니가 다시 살아오셨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왜냐하면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에는 집에 나를 돌봐주시는 따뜻한 어른이 있었던 거죠.

 

-어쨌든 지지적인 관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같아요. 쉼터에 사는 그 시기에만 케어해 줄 수 있고 그 지지를 지속해 줄 수 있는 관계가 없으니 안타깝죠. 돈도 없고 뭐도 없으면 친구가 제일 큰 자원인데......

오늘 인터뷰 즐거웠어요. 이런 연구가 있었다는 걸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의미있다고 봅니다. 인터뷰 마치면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해 주세요.

: 커피 자주 드릴게요. 커피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이런 연구가 지속되면 좋을 것 같아요. 계층, 연령, 섹슈얼리티 문제를 여성주의와 결합시켜서 계속 발전시켜 나가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집과 쉼터 밖에서 생활하는 십대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개인이 처한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청소녀들의 현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출 청소녀들에게 익숙한 바깥 생활이 생존 방법일지라도 방치 하는 것보다 다양한 성격을 가진 쉼터가 많이 생기길 바랍니다.

다음엔 청개구리 식당도 방문 해보고 싶네요! 인터뷰 해주신 칠월님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