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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5월 퇴소자모임. 그리운 얼굴들, 반갑게 모였습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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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5월 퇴소자모임. 그리운 얼굴들, 반갑게 모였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 2019. 5. 31. 17:42

 

* 열림터 25주년을 맞아 야심차게 기획된 퇴소자모임은 3, 5, 7, 9, 11월 셋째 주에 열립니다. 혹시 연락을 못 받은 분들은 연락처가 열림터에 없어서 그러니 사무실(02-338-3562)로 연락 주세요. 언제든 반깁니다! 

 

* 아직은 딱히 부를 이름이 없어 '열림터 퇴소자모임'이라고 하고 있는데 말이죠. 적당한 이름이 없을까요? 듣기만 해도 구. 생활인들은 열림터가 생각이 나면서, 왠지 모임에 와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 쌈박한 이름! 생각났다면 역시 열림터 사무실로 연락 주세요. 댓글도 대환영! 

 

 

 올해 두 번째 열린 퇴소자모임. 3월 모임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전화기에 불이 나게 어색한 연락을 돌렸습니다. '같이 생활하지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전화해서, 혹시나 열림터에서 생활했던 게 드러나는 게 싫어서 퉁명스럽게 대하면 어쩌지?'라는 고민 때문에 심장이 쿵쾅쿵쾅... 그런데 말이죠, 대부분 제가 열림터 활동가라고 잘 지내는 지 궁금하다고 퇴소자모임 하는데 만나면 좋겠다고 하니까 엄청 반가워해 주었습니다. 열림터 입사 전 개별 성교육하며 알게 된 사람도 있었고 그냥 열림터에서 연락이 왔다는 자체로 반가워한 사람도 있었어요. 시절이 너무 지나 전 활동가들에게 받은 연락처가 이미 남의 연락처가 된 경우도 있었지만요. 각자 다양한 지방에서 다양한 삶을 살며 잘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 모임에 못 와서 아쉽다, 다음 모임에 꼬옥 만나자 약속도 하고요. 10년 전에도 활동했던 사자와 즉석 전화 연결(?)도 이루어졌습니다. 

 

 전화도 돌리고 문자도 돌리고 바쁘게 한달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모임 3일 전 온다, 안 온다 답장 해달랬는데 너무나... 답장이 없는 거예요. 3년차이면 뭐하나, 왕소심 활동가인 저는 다시금 불안, 초조, 예민의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늘 모임에 노 쇼(no show)가 있기에 온다고 한 사람도 안 올 수도 있다, 모임을 꾸준히 하는데 의미를 두자, 혹시나 활동가들의 의지로 억지로 퇴소자모임을 해서 자꾸 구. 생활인들을 쿡쿡 찌르는 게 아닐까? 여러 고민이 다시 들었습니다. 그런데 모임 전날, 당일에 갑자기 오겠다고 마음을 바꾼 사람도 있었고 연락없이 불쑥 나타난 사람도 있었습니다. 5월은 모임의 달, 모두가 불쑥 불쑥 오고 싶은 마음이 드는 달이었나봅니다. 

 

 같은 시기에 생활하지 않았던 사람도 있어서 좀처럼 긴장감이 풀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마음열기 프로그램으로 '생활인을 찾아라! 빙고'를 하였습니다. 총 9칸, 칸마다 서로 시덥잖은 질문('오늘 양말 신었어요?', '혹시 생일이 5월이에요?', '휴대폰번호에 3이 들어가나요?' 등등) 을 해가며 이름을 묻는 게임이었습니다. 가장 빨리 한 줄 빙고한 사람이 너무 금방 나타나서 가장 빨리 9칸 다 채우는 사람으로 규칙을 바꿨지만 승자가 중요한 게임이 아니라 서로 얼굴 익히는 게 핵심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쭈뼛 거리던 사람들이 말 한 마디 건네자마자 바로 화기애애 해지는 상황!

 

 

 친해지고 나서는 같은 시기에 생활하지 않았던 사람이 꼬옥 1명 이상 들어가게 4-5명이 조를 꾸려서 이야기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이야기 주제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열림터 퇴소 후에 생긴) 고민이 있나요?', '열림터 선배로서 현 생활인들, 예비 생활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이 세 가지 였습니다. 처음에는 30분 정도 시간을 할애했는데 점점 시간이 모자란다는 성화에 1시간씩 조별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일하다가 노는 사람이 많아서 모두의 부러움을 산 조도 있었고요. 현 생활인들에게 주고 싶은 조언은 '적금 드세요', '보험 드세요' 여서 다들 빵 터지게도 하였습니다. 생계와 각자의 건강문제, 회사 적응,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오래 이야기를 나눈 조도 있었습니다. 열림터에 있을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있으면서 자립 준비를 탄탄하게 하라는 조언(퇴소하고 나니 활동가들이 생활인들에게 바라는 바와 이렇게 일치하다니!)도 있었고요. 연애 중인데 나는 상대방 부모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고 애쓰는데 남자친구는 아무에게도 잘 보일 사람이 없다는 게 서운하다는 얘기에 다들 깊은 탄식을 내보이기도 했습니다. 

 

 각 조별로 나눈 이야기를 듣고 나니 생각보다 우리 안에서 고민상담이 잘 될 것 같아 더 나누고 싶은 고민은 없는지 물어보기도 했어요. 계속된 시설 부적응으로 어디서 생활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고민, 결혼을 준비 중인데 예식장에서 부모님 자리를 비워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살짝 설전이 이어졌지만 비슷한 위기경험, 쉼터 생활을 해봤던 사람들끼리 솔직하게 해줄 수 있는 조언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날선 조언들은 활동가들이 살짝씩 다듬어서 전달하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니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나고 후기를 나누고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후기 몇 개를 뽑아보자면,

 

'같은 기간에 있지는 않았지만 열림터에서 같이 생활한 친구들 같이 친근하게 느껴지고 퇴소 후의 얘기 들어서 혼자만의 고민이 아닌 것을 알아서 의지가 되요.'

 

'재밌었어요! 다음에는 오늘 나눈 고민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같이 고민해봐도 괜찮을 것 같아요.'

 

'너무 좋았어용. 한 번 더 보고 싶어요.'

 

'사실 오늘까지도 고민했어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는 생각했어요. 다 열심히 살고 있구나. 듣기만 하는데도 많이 힘 받고 가요. 초대해 주셔서 고마워요:) 다들 아프지 말고 건강하세요. 다음에 만나요.'

 

'추석, 설날에 할 일 없는 사람들 모여서 다같이 밥 먹어요. 연휴에 갈 곳이 있길 바래요.'

 

 '열림터'라는 이름으로 쉽게 가까워질 수 있는 우리, 이제 다음 모임을 함께 꿈꿔도 되겠죠? 복작복작 모임을 마치고 삼삼오오 모여 2차다, 3차다 부산 떨며 가는 모습이 정겨워보였습니다. 물론 저는 모임이 잘 진행되었다는 기쁨에 그리고 초초초긴장 상태가 사르르 풀렸기에 기절해서 잠들었다는 사실... 다음에 또 만나요, 여러분! 

 

 

* 이 후기는 열림터 활동가 백목련이 작성하였습니다. 댓글 대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