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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의 편지 본문
젤리
<생존자의 목소리>는 연 2회(1월, 7월) 발간되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회원소식지 [나눔터]를 통해서 생존자로서의 경험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 마련된 코너입니다. 투고를 원하시는 분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대표메일 (ksvrc@sisters.or.kr)로 보내주세요. ☞[자세한 안내 보기] 책자 형태인 [나눔터]를 직접 받아보고 싶은 분은 [회원가입]을 클릭해주세요. |
한국성폭력상담소를 아끼고 사랑해 주시는 모든 여러분들 안녕하세요. 저는 열림터에서 1년 1개월 동안 다사다난한 생활을 보내고 현재 퇴소하여 자립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열림터 전 생활인 젤리라고 합니다! 모두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를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열림터의 분위기 메이커이자 많은 생활인들과 선생님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었던 생활인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읽게 될 이 글은 저의 두 번째 자립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처럼 자립을 막 시작했거나 현재 자립을 해서 혼자 사시는 분들이 있다면 이 글이 여러분들에게 큰 위로와 공감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는 2018년 3월 7일에 열림터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열림터에 오게 된 이유는 아버지의 잘못된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그 전에도 잦은 폭행과 폭언이 있었지만 ‘내가 잘못했겠지’란 생각으로 버텼었습니다. 하지만, 그 날의 일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더 이상은 아버지와 같이 사는 게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했고 주변의 친구들과 인터넷을 통해서 알아본 안양에 있는 긴급 피난처에서 일주일 정도 지내다 결국 열림터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나의 첫 자립은 열림터에 입소했을 때였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혼자 들어온 열림터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사는 낯선 공간이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저는 실질적인 자립에 관해서는 딱히 큰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열림터 생활인들과 선생님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이곳이 정말 나의 집이라고 생각이 들고 난 뒤부터 점점 두 번째 자립과 가까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열림터 생활인으로 지낸 지 일 년이 다 되어갔을 때 저는 후련한 감정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열림터에서의 생활은 정말로 좋았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기 때문에 불편함도 그만큼 컸고 불만도 많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더욱 두 번째 자립이 얼른 시작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퇴소 날짜가 정해지고 퇴소할 날이 점점 다가올수록 후련함보단 걱정과 두려움, 아쉬움이 많이 들었습니다. ‘내가 과연 여기 나가서도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혼자 우울해하지 않고 잘 견뎌 낼 수 있을까, 우울이란 감정이 나를 덮쳐올 때면 나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어려운 일이 나에게 왔을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 등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쉬웠던 일 중 제일 큰 것은 바로 가족들과 또 헤어져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렵게 만든 나의 두 번째 가족들과 또 이별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었죠. 저에게 가족이라는 존재라는 이때까지 큰 의미 없는 단어일 뿐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의 안 좋은 모습만 보며 자랐고 가족이란 ‘그냥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일 뿐’ 나에게는 그 어떤 도움도, 큰 의미도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열림터에 입소하고 난 뒤 가족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하고 나에게 얼마나 큰 영향과 큰 힘이 되는지 알게 되었을 때 나를 포함한 어느 누구에게나 가족은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퇴소를 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던 과거의 저를 탓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던 중에도 눈물이 찔끔 날만큼 저는 열림터를 사랑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저는 성인이고 여기 더 있게 된다면 이 생활에 너무 안주할 것 같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고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저의 두 번째 자립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보여 드리기 부끄럽지만 현재 제가 살고 있는 저의 새로운 방입니다! 오로지 저를 위한 공간은 처음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방을 꾸몄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꾸몄던 것 같아요. 이사온 날 처음으로 빈 집에서 혼자 자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피곤해서 그랬나, 아님 정말 편안해서 그랬나, 처음 이사온 날은 정말 편안하게 푹 잤습니다. 처음엔 통금 시간도 없어지고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꾸 밖에 나가서 새벽까지 놀다 들어오고, 새 벽에 늦게 자고, 먹고 싶은 건 다 먹고 말 그대로 제가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곧 한계가 느껴지더라고요. 처음엔 모든 게 즐거웠지만 일주일 정도가 지나고 나니까 외로움과 우울이 찾아오면서 의무적으로 나가야 될 것만 같고, 일부러 늦게 자야 될 것만 같고 예상했었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니까 정말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래도 계속 우울해 있는 것보단 이왕 이렇게 된거 친구들도 만나고,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다 해보고,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걱정이 되고 불안하다는 것들을 숨김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말도 해보면서 시간을 보내니까 마음도 훨씬 편해지고 불안했던 감정들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아, 물론 상담도 약도 빼먹지 않고 꾸준히 잘 다니고 잘 복용하고 있고요. 그래서 현재의 젤리는 아주 만족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주 가끔 먼 미래와 제 삶에 대해 두려움과 걱정이 들 때가 많습니다. ‘지금 당장은 하루하루를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앞으로도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등 여러 걱정 말이죠. 걱정을 아예 안 하고 살아갈 수는 없지만 지금의 저는 이 걱정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열림터와 상담소 선생님들을 비롯해 저를 많이 사랑해 주고 아껴 주고 응원해 주는 많은 가족들이 있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죠. 처음엔 ’가족을 잃는다’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가족을 잃는 게 아니라 찾아갈 가족들이 생긴 거니까요.
혼자 스스로 해결해야 되는 일들도 많지만 정말 내가 힘들어할 때면 찾아갈 공간이 있다는 것은 저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나 큰 위로와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만약, 여러분들도 내가 너무 힘들거나 우울할 때면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내가 정말 믿을 수 있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 찾아가는 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나를 찾아주고, 나를 반겨주고, 나를 기다려 주는 곳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고 ‘나’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느끼게 해 주니까요. 앞으로도 수많은 어려움과 두려움이 저를 찾아오겠지만 저를 사랑해 주는 나의 가족들과 함께 이겨내고 열심히 제 인생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제 두 번째 자립을 스스로 축하하고 많은 분들의 삶에도 항상 행복하고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가족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언제나 행복한 삶을 보내시길 소망하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창창한 스물 둘 젤리야, 너의 자립을 축하해!
출처: https://ksvrc.tistory.com/910?category=688434 [뛴다! 한국성폭력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