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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감나무의 인사

열림터 2010. 5. 10. 18:04

안녕하세요, 저는 열림터 모퉁이에 서 있던 감나무에요.

이 자리에 무척 오래 살았지만, 처음 이렇게 인사를 하게 되다니, 기분이 남 다릅니다. 주변에 같이 살고 있는 대추나무, 모과나무도 누리지 못한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 같아 흐믓하기도 하고요. 나는 열림터 식구들이 여기 오기 한참 전부터 이 자리에 서서 동네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열매를 맺기 위해 햇빛과 땅의 기운을 모아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어요.

해마다 맺는 열매들은 모두 달라요. 잘 익고, 많이 열릴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물론 있어요. 이 집에 열림터 식구들이 온 이후로는 잘 관리해주지 않아, 혼자 노력을 많이 해야 했어요. 이렇게 좋은 나무를 앞에 두고서, 이렇게 신경을 안 써줄 수가 있는지 정말 화가 났어요. 도대체 뭐하는 집사람들인가 싶어 직접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이때부터 지금껏 나는 길 밖 소식보다 담장 안 소식에 더 밝은 나무가 되었지요.

그동안 쭉 지켜보니 이 집은 식구들이 참 많아요. 게다가 바뀌기도 하는 것 같았어요. 이 집 살림을 들여다보기로 작정한 그날에 ‘고녀석 참 이쁘다’ 싶었던 녀석이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안보이더라구요. 그러다보면 어느새 개구쟁이 같은 녀석이 새로 보이기도 하고 말이에요. 그러니 조용할 날이 없는 집안인 것이지요. 이 집이 조용할 날이 없다는 것 대문 소리만 들어도 금새 알게 되요. 아침 시간에는 줄줄이 뛰어서 문을 쾅쾅 닫고 나가고, 버스카드 때문에 다시 후다닥 뛰어 들어오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었어요.
가끔은 여기 선생님들하고 싸우는지 울면서 현관문 쾅, 자기들끼리 싸우고 나서 현관문 쾅. 어떨 때는 내 몸이 다 아플 정도에요. 이렇게 식구가 많고 시끄러우니, 나 같은 나무에게는 신경을 못 쓸 수밖에. 이젠 다 이해가 되요, 오히려 돕지 못해 안타까울 때도 있었어요. 특히 해 뜨기도 전에 보따리 싸서 나가던 애들을 봤을 때는 너무 놀랐어요. 내가 손발이 있었으면 붙들고 말이라도 했을 텐데, 이럴 땐 참 나무인생이 얼마나 서글픈지 몰라요. 고작 할 수 있는 건 익지 않은 감 몇 개 날려 선생님 방 가까이 던지는 것 뿐 이었거든요. 신기하게도 내 노력 덕분인지 일어나시는 것도 몇 번 보았어요.

이렇게 떠 올리니 참 기억이 많네요. 내가 좋아하던 시간은 일주일에 한번 청소시간이에요. 여기 식구들이 드디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시간이거든요. 물론 좋은 관심은 아니에요. 잎들, 익은 감, 익지 않은 감이 바닥에 쌓이면 아이들에게는 모두 불만거리에요. 특히 열매가 잘 익어 떨어질 때는, 차마 귀를 열고 있지 못할 정도에요.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은 당연하고 훌륭한 일인데도, 나는 말 할 기회가 없었어요. 가끔은 화가 나서 일부러 참았다가 물청소가 끝나면 잘 익은 감을 떨어트리기도 했지요.


자잘한 추억들이 많은데, 참 아쉬워요. 그러고 보니, 올해는 유독 열매 맺기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작은 키에도 긴 막대기에 의지해서 잘 따보려고 노력했던 모습들, 맛있게 먹던 얼굴들이 예뻤는데, 올해는 많이 주지는 못했네요. 이번 기회에 잘 쉬고, 조금씩 더 커질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할께요. 그럼 다시 볼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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