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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결혼기념일을 맞이한 어느 가족의 회의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 2022. 7. 21. 11:33

 

안녕하세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입니다.
익명의 후원자님께서 함께 보내주신 글을 나눠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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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안, 지난 월요일이 결혼기념일이였네...”

“괜찮아 나도 몰랐는데.. 뭐..”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니 결혼기념일을 서로 무심히 지나가게 되었어요.

그러다 어느 해에 왠지 미안한 마음에 이리저리 돈을 좀 모아봤어요.

 

“올해는 내가 제대로 챙겨보려고 돈을 좀 마련했다! 뭐든지 말해~!”

“왠 돈? 나 필요한 거 없어! 그냥 케잌이나 하나 사먹자!”

“그래? 그래... 그러면 이 돈은?”

 

애써서 마련한 돈을 들고 어쩔 줄 몰라하며 필요한 걸 찾는 대화를 시작했어요. 소파가 낡았는지 세탁기가 오래되었는지... 한참을 찾아봐도 없더라고요. 모두 낡았어도 쓸만했고 정작 진짜로 필요했으면 어떻게든 사면서 살고 있더라고요. 필요한 물건도 먹고 싶은 음식도 못 찾겠더라고요.

 

“이왕 모은 돈 네가 가장 행복해할 곳에 쓰자!”

“그래? 그러면 우리 기부하자! 얼마전에 인터넷에서 봤는데 OO노조가 엄청 힘들게 농성을 하고 있대. 거기 후원하자! 그리고 여기랑 저기도!!”

“좋아! 그러면 매년 결혼기념일에 기부하자! 내년부터는 적금을 부어서 하면 되겠다. 서로에게 가장 좋은 선물이 되겠어!”

“그래! 잊혀지던 결혼기념일이 가장 기다려지는 기념일이 되겠네”

 

이렇게 저희의 결혼기념일 기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로 3년차가 되었네요. 일 년동안 적금을 부어서 마련한 기부금으로 매년 세 곳에 기부를 하기로 했어요. 결혼기념일이 가까워오면 후보를 생각해둡니다. 결혼기념일 당일에는 가족이 모여서 의논을 해요. 어디에 얼마를 보내면 좋을까 하면서요.

 

 

2.

“여기 남자 화장실이예요!”

“알고 있습니다.”

 

“너 여자구나!”

“아니! 나 남자야!”

 

아이와 함께 다니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말들이 오갑니다. 둘째 아들이 긴 머리가 좋다며 머리를 기른 뒤로 성별 구분이 되어있는 곳에 들어갈 때는 항상 이런 대화를 해야 합니다. 심지어 굳이 말을 거는 사람도 꽤 있어요. 아이들 붙잡고 남자는 머리가 짧아야 한다고, 여자처럼 머리를 기르면 *** 안된다고 훈계를 하는 사람도 있고요. 굳이 모르는 사람이 지나는 아이를 붙잡고 말이죠. 어른들만 그런 게 아니고 아이들도 그래요. “여자”라고 놀리는 건 항상 있는 일이죠.

 

고작 머리카락 길이로 이런 일을 당하면서 살아야 하는 구나 싶어요. 성별이 뭐가 중요한지 알 수가 없어요. 심지어 상관없이 옆을 지나가는 데 왜 그러는 걸까 싶어요. 저 어린 아이들은 대체 언제 저렇게 강력한 고정관념을 배웠을까 답답하고요.

 

 

3.

“올해는 어디에 해? 후보를 생각해봤어?”

“생각은 해봤는데 어떻게 주면 되지? 후원계좌가 있나?”

 

올해는 기부의 기준을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물론 평등한 세상을 위해 도움되는 곳에 기부하자는 마음은 처음부터 이야기했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기부금 전달을 위해 연락을 해야하는지 혹은 어떤 계좌로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등등 신경쓰이는 일들이 있더라고요. 여성단체들은 계좌를 아예 공개하지 않는 곳도 있고, 농성장에 계신 분들은 후원을 받는 공식 계좌가 없기도 하고요.

 

“‘갑자기 꽁돈이 툭 생겨서 운수좋은 날이다‘면 되지 않을까?”

“그래 그렇게 큰 돈도 아니고, 또 갑자기 생기면 하고 싶었던 거 한번 해 볼만한 돈은 되니까!”

 

저희는 기부할 때 두 가지 기준을 두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평등한 세상을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 후원하자!’ 그리고 ‘그 사람이 행복한 곳에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평소에 못 먹었던 비싼 밥을 한번 사먹든지, 비싼 옷을 사입든지, 개인 생활비에 보태든지 상관없이 무엇이든 행복한 순간이 되면 좋겠어요. ‘후원금이니 공금으로서 영수처리하고 어떻게 관리하고...’ 이런 거 말고요.

 

단체에 후원하게 되면 저희가 어떻게 이야기하든 너무나도 정확하게 영수처리하고 딱딱 맞춰서 사용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가는 거겠죠. 그것도 좋아요. 다만 개인에게 후원하게 되면 저희는 이런 메시지를 전해요. “일하는 데만 사용하지 마시고 맛있는 거 드시고 사용하고 싶으신데 마음껏 사용해주세요”

 

 

4.

이런 사연으로 올해 열림터에 기부하게 되었습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평등한 세상을 위해 누구보다 수고하고 계신 걸 알고 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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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인은 입소자, 또우리는 퇴소자를 부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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