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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터를 열며 -1994.12. 나눔터 본문

친족성폭력을 말한다

열림터를 열며 -1994.12. 나눔터

열림터 2011. 6. 12. 23:01
이 글은 1994년 12월,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식지 '나눔터' 13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지금은 당시와 달라진 점도 많지만,
열림터를 처음 열 당시의 생생한 고민을 담고 있어서 다시 올려봅니다.


<열림터를 열며>

상담소가 문을 열고 4년 동안 만난 성폭력 피해여성들의 처지는 참으로 절박했다. 상황의 절
박함과 지속되는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심리적·의료적·법률적 지원을 해오면서 답
답함과 안타까움이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성폭력 피해여성은 정신적·육체적 보호와 안정, 치유뿐 아니라 지속적인 상담과 다른 피해
여성과의 경험 나누기를 통한 주체적인 삶의 회복을 필요로 한다. 특히 근친성폭력에 시달리는
피해여성은 가해자와 함께 사는 거주지를 떠나지 않고서는 계속되는 성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피난처와 쉴 곳이 없는 이들에게는 전화 혹은 면접을 통한 상담만으로는 충분할 수 없는
것이다.

6천 5백여 회에 걸친 상담을 통해 만난 4천여 건의 피해자들 중 8%는 보호시설을 필요로 할
정도로 위기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내담자를 지원하기 위하여 본 상담소에서는 성폭력 피
해여성의 새로운 삶과 자립을 위해 작은 울타리인 열림터를 마련했다. 이번 특집에서는 열림터의
기능과 의의를 살펴보려고 한다.

1.열림터의 기능

열림터는 성폭력 피해 여성의 피난처로서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의 생활과
상담한 모든 내용은 비밀이 보장된다.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피해 후유증을 최소화하는데 주
력한다. 또한 가해자의 폭력에 대한 피해자의 저항을 지지해주는 실질적이면서도 상징적 의미의
지원체계이다.

1)상담
① 개별 상담
열림터 운영위원과 주 1회 이상의 면접상담을 통해 피해여성의 심리적 어려움 극복을 돕는
다.

② 집단 상담
피해 여성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성폭력 경험을 드러내고 다른 구성원들과 피해 경험을 나눔
으로써 고립감·이질감·자기 비하감 등 심리적 혼돈에서 벗어나도록 한다.
집단상담을 통해 서
로가 위로하고 지지해 주면서 정보를 주고 받으며 자신을 이해하고 자존감·정체감·자신감을 회
복하도록 돕는다.
6단계 상담 과정을 통해 집단 내의 다른 구성원의 행동과 반응을 보면서 자기 노출과 자기
이해를 돕고 자신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기회로 활용된다. 피해자가 갖는 느낌의 공유, 구성원간
의 이해와 지지는 정화 작용을 하기 때문에 피해 후유증 극복에 큰 도움이 된다.

③ 전문가 상담
주 1회 정도 심리 의료 법률 전문과와의 상담이 있다.

④ 비디오 관람, 독서, 토론 등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같은 여성으로서 동일
한 문제를 갖고 있다는 자각과 자매애를 형성하는 장을 마련한다.

⑤ 의료적, 법률적 도움이 필요한 피해 여성에게 이 분야의 자문위원과 연계하여 실질적
도움을 받도록 지원한다.

2)운영

①대상
열림터를 원하는 성폭력 피해 여성

②이용 방법
일차적으로 전화 상담, 면접 상담을 한 후 열림터 운영위원회 협의에 따라 열림터에 입주가
결정된다. 열림터 이용 기간은 30일을 원칙으로 하며 필요시 연장이 가능하다. 이곳을 이용할 때
는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해야 하며 내담자가 미성년자일 경우 보호자 동의
서를 첨부해야 한다. (단, 국민학생일 경우는 보호자 동반 원칙)
또한 피해 여성이 열림터에 오면 열림터 내담자 카드를 작성해야 하며 생활 수칙 서약서에
서명을 해야한다
. 이렇게 하는 것은 열림터 내담자들의 공동생활에 있어 신변보호와 안전한 생활
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기 때문이다.

③ 운영위원회
7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열림터 운영위원회에서는 개별상담과 집단상담을 이끌어 가며 내담자
의 열림터 입주 여부, 내담자 관련 사항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 외의 여러가지 사항은 열림터 실
무자가 담당한다.

2.열림터의 의의

국내에서는 최초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한 열림터는 마땅한 피난처가 없어서 계속되는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는 수 많은 피해 여성들에게 자립의 기반이 될 것이다. 또한 열림터의 치
유프로그램과 공동 생활은 피해여성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 보고 새로운 삶을 열러갈 수 있는 용
기와 기회를 줄 것이다.



<열림터가 필요했습니다!>

안전하게 지낼 공간이 없을까요?

내담자는 결혼 후 남편이 외국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전세방을 얻어 혼자 살고 있었다. 그런
데 주인집 남자가 여자가 혼자 산다는 것을 미끼로 함부로 내담자의 방에 드나들며 전화를 쓰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잠겨 있는 방문을 부수고 들어와 이런 저런 트집을 잡고 구타와 협박을
해가며 내담자를 강간하였다. 이 일이 있은 후 내담자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일단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음을 확인하였다.

어느정도 정신을 차리고 나서 관할 경찰서에 고소를 했으나 형사는 내담자의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내담자를 추궁해서 내담자는 모욕감을 느끼고 더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
었다. 가해자는 주거를 침입한데다가 폭행과 강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일인지 구속수사
를 받지 않고 온 동네를 다니면서 내담자에 대한 나쁜 얘기를 하였다.

내담자는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 고소를 취하해 버리고, 전세금을 받아서 멀리 다른 곳으
로 가고 싶었지만, 단순강간이 아닌 강간치상이라서 고소를 취하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내담자
는 언제부턴가 가해자측 사람들 20여명이 계속 쫓아다니면서 자신의 사진을 찍는다며 극도의 불
안 증세를 보였다. 결국 전세금을 받지 못한 채 재판이 열리는 날까지도 언니집에 얹혀사는 상태
가 되었다. 그러나 언니와 형부는 내담자를 이해하고 돕는 지원자가 되어주지 못했다. 내담자는
더 이상 가해자에게 시달리지 않고, 안전하게 지낼 공간이 없는지 여러번 묻곤 했다. 이 내담자
는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법적지원과 심리적 안정을 취할 거처가 필요했다.


앞으로 살아갈 길을 준비할 곳이 있을까요?

내담자는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며 열 살때부터 아버지에게 추행 및 강간을 당해왔다. 이
아버지는 내담자가 열 살 때 안방에서 비디오를 보다가 팔, 다리를 주무르라고 내담자를 불러서
는 옆에 뉘우고 손가락을 내담자의 성기에 집어넣는 등 추행을 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일년에 두
세번 정도 내담자를 강간, 추행했으며 둘째 딸에게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주로 어머니가 집에
없을 때에만 그러한 짓을 하고는 내담자에게는 "엄마에게 이 사실을 말하면 다 죽여버리겠다"고
위협을 했다. 아버지는 성격이 난폭하고 거칠어, 평소에도 칼을 몇개씩 차고 다닐 정도였다.

내담자는 평소에 어머니가 집에 없으면 불안해하고 아버지의 오토바이 소리만 나도 기겁을 했
는데 어머니는 워낙 남편이 난폭하니까 무서워서 그러는 줄만 알고 있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집에 없는 틈을 타서 아버지는 술을 먹고 망치와 칼을 옆에 두고 딸들을 협박
하고 추행하려 했으며, 딸들이 저항을 하자 집을 나가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내담자는 망치와 책
가방을 들고 작은 외할머니집으로 도망쳤다.

뒤늦게 모든 사실을 알게된 어머니는 "남편이 그 지경이어도 애들때문에 살았는데 이제는 같이
살 이유가 없다"며 이혼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남편이 순순히 이혼을 해줄 리가 없고, 그렇다고
이혼을 기다리며 집으로 다시 들어갈 수도 없었다. 금방 남편이 알아낼 것이 뻔하기 때문에 작은
할머니 집에 계속 있을 수도 없었다. 당분간이라도 내담자와 형제들, 어머니가 같이 머물면서 이
혼을 준비하고 앞으로 살아갈 길을 찾을 곳이 절실히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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