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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터 친구들을 만나며- 1997.12. 나눔터 본문

친족성폭력을 말한다

열림터 친구들을 만나며- 1997.12. 나눔터

열림터 2011. 7. 13. 08:25

  
이 글은 1997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식지 '나눔터'에 실렸던 글입니다. 당시 대학생으로 전공과목 실습 차 열림터 친구들을 만나셨던 김선희님이 실습과정에서 느끼고 생각하신 것들이 잘 드러나 있네요.
열림터 친구들에게 과외를 해 주시거나 멘토가 되어주시는 분들은 열림터 운영에 있어서 너무 소중한 분들이세요. 가해자를 피해 가족을 떠나와 폐쇄적인 관계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열림터 친구들에게 이 분들의 존재는  큰 힘이 된답니다.



열림터 친구들을 만나며

김선희(한신대학교 재활학과/본 상담소 실습생)


우리는 흔히 세상이 아무리 험악해도 나에게만은, 나와 사랑으로 맺어진 사람들에게만은 가슴 아픈 힘든 일이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도처에는 온갖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은 왠지 맑고 투명한 영혼을 가진 이들에게 더욱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바로 어린이들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이 그것이다.

나의 과 특성상 3학년이 되면 의무적으로 실습 과목을 수강하게 된다. 실습장소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선배들의 실습기록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유독 내 마음을 끄는 것이 한국성폭력상담소이었다. 얼마 전에 라디오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에 대한 방송을 듣고 같은 여성으로서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던 나는 페미니스트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일반 복지관과는 좀 다른 것을 경험하고 배우고 싶은 마음에 상담소 문을 두드렸다.

이곳에서 실습하는 동안 성폭력에 관한 각종 자료와 책을 접하면서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성폭력의 실태를 알게 되었고, 그것에 맞서 열성을 가지고 묵묵히 대응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있는 열림터에서 내담자들과 어울리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든게 낯설고 '잘 해야 할텐데'라는 생각에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실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그래도 '뭔가 했다'는 뿌듯함에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내가 할 일은 어린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일이었는데, "숙제를 좀 많이 내주세요."라고 요청하는 이들의 말에 더욱더 열성적으로 가르칠 수 있었고, 또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엽서를 받았을 때에는 보람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나 기뻤다.

내담자들은 대개가 초등학생이거나 중학생이었는데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옆집에 사는 어린이들과 같이, 십대들의 유행을 따르고 야무진 꿈을 키우며 사는 평범한 이들이었다. 사실 그 아이들의 내면에는 아픈 상처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밝고 명랑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너무 대견스러웠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아픈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공부 뿐만 아니라 이들의 올바른 정서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있다.

그리고 내 생각으로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대할 때 가장 좋지 않은 일은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대하는 것이다. '무언가 보통 사람들에 비해 사고방식이 비관적일 것이다'라든가 '그들의 행동거지가 보통 사람들과 틀릴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낙인찍어 버리는 행동은 그들에게 또한번의 상처를 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들을 올바로 이해하지도 못한 것이다. 또 그러한 행동들은 성폭력 피해자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우롱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숱한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를 양산하는 왜곡된 성문화에 대한 진지한 반성은 고사하고 피해자에게 손가락질이나 한다는 것은 용서못할 일이다.

그러나 나는 믿고 싶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소외당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외면하려는 사람들보다는 약한 자에게 손을 내밀어 그들과 함께 걸어가려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을...... 또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작은 대가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혹은 일반인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상담을 하며, 대책 연구를 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선생님들께도 깊은 존경을 표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만약에 행복과 불행의 양이 같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아직 슬픔에 젖어있는 피해자가 있다면, 우리의 삶에 뛰어넘어야 할 아무런 한계가 없다면 우리가 하는 경험들은 결실의 기쁨을 잃어버린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들에게 꼭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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