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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성폭력 피해자' 유나의 일기- 2000.12. 나눔터 본문

친족성폭력을 말한다

'친족성폭력 피해자' 유나의 일기- 2000.12. 나눔터

열림터 2012. 2. 29. 16:59

 이 글은 2000년 나눔터(한국성폭력상담소 소식지)에 실렸던 글입니다.
 당시 열림터에 살다가 퇴소한 친구가 직접 쓴 일기와 열림터 활동가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유나의 일기

나는 어려서부터 엄마가 싫었다. 엄마가 하는 말과 행동들이 모두 나에게는 악몽이었다. 나는 항상 이런 말을 들었다. "너 때문에 아빠가 죽었다"고. 엄마가 술을 드시고 오는 날이면 항상 나에게 손찌검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사망이후 알콜중독이 되었다. 6살인 나에게는 너무나 견디기 힘든 곤욕이었다. 동네사람들은 나를 오빠네 집으로 보내기로 했다. 오빠의 집으로 가는 날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내 손을 꼭 잡으면서 잘 지내라는 엄마의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중략…
오빠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소름이 끼쳤다. 나는 겁에 질려 있었다. 벌떡 일어나 무릎을 꿇고 오빠에게 빌기 시작했다. 무엇을 잘못 했는지는 모르지만 빌어야 했다. 눈엔 어느샌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중략…)
이게 꿈이길 바랬다. 학교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씻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왔다. 버스에 올라타 자리에 앉는 순간 눈물이 흘렀다. 엄마를 원망하였다. 나를 낳아준 엄마가 제일로 미웠다. (…중략… )
담임선생님과 나는 정류장에 도착하여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표를 사고 자리에 앉았다. 그 사이에 성폭력상담소라고 쓰여있는 쪽지를 건네며 지리를 설명해 주셨다. 버스에 올라타고 선생님께 손을 흔들었다. (… 중략…)
열림터는 나의 상상과는 달리 그저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왠지 몸이 피곤했다. 침대에 누웠다. 막상 자려니까 잠이 오지 않았다.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데 차마 뛰어내리지 못하는 내가 너무 바보스러웠다. 무슨 미련이 있다고 살려고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유나의 일기 中에서-


Dear. 선생님들께...

안녕하세요. 늦은 저녁, 여기는 사무실이고, 저는 유나입니다.
요즘은 날씨가 많이 춥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저도 요즘은 추운 탓을 하며 많이 늦장을 부려요. 아침에 이불 속에서 '10분만 더', '5분만 더' 하다보면 허둥지둥 거리게 됩니다. 오늘 아침에도 소미랑 같이 전쟁을 한바탕 했어요. 거기다 집에서 나오는 데 불은 껐는지, 수돗물은 잠궜는지, 가스 밸브는 또 열려 있지 않은지... 암튼 이렇게 분주하게 신경을 쓰다가 헉헉거리면서 회사에 도착을 합니다.
그럴 때 문득문득 열림터 생각이 간절하답니다(이구 ~~~ 다시 들어가고 싶당 정말루 ~).
그러고 보니 저랑 소미랑 열림터에 온지 1년이 넘었네요.

소미나 저나 지친몸으로 이곳에 왔을 때… 생각나세요? 정말로 믿고 의지할 아버지며 오빠한테서 피해를 입고.. 실망과 두려움으로 이곳에 왔을 때, 눈으로 웃어주시던 선생님들!
한없이 울어도 된다며 휴지를 손에 쥐어주시던 선생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커서 열림터를 떠나네요. 세월이 빠르다고 느끼는 건 열림터 생활이 즐거웠다는 거겠죠. 선생님들이랑 놀러 가고(생전 처음 해보는 것이 너무 많았어요) 공부두 하고(누군가로부터 '공부'하라는 말을 듣는 것이 기쁘게 느껴졌으니까요), 좋은 친구도 사귀고 정말로 많은 것이 저에게 다가왔어요. 이제 이렇게 소미와 둘도 없는 짝이 되었네요. 소미……, 유나가 오빠로부터 피해를 입고 열림터에 들어와 학교도 다니며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즈음, 하안 피부에 배시시 웃기를 잘하는 소미라는 아이가 입소했지요. 처음에는 그저 어색하고, 자신이 겪어온 일들의 상처에서 헤어 나오는 것이 우굼潔珦많퓐?서로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요.

외로움을 아는 사람이었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씩 말을 걸었고 지금은 떨어져 있으면 더 어색해요. 나이로는 소미가 동생이지만 하는 행동은 저보다 언니인걸요. 이런 동생을 두고 있어 어느 누구보다 좋지만.. 가끔은 자기의 아픔을 숨기면서 까지 저에게 웃음을 보이는 소미가 안타까울 때도 있어요. 세상에서 제일루 사랑하는 동생 소미, 부럽지요? *^^*

우리가 가진 조그만 집(정확히는 방이지만) 생각만 하면 그냥 좋아요. 이 집이 얼마다 위대한지 아세요? 집주인 아주머니께 월세 드리는 날은 손이 막 떨리지만 취직해서 번 돈으로 마련한 집이라는 것이 여간 대견스럽지가 않아요(으쓱으쓱, 헤헤). 이 집에 들어오기 전에는 정말 막막했어요. 퇴소 날짜는 다가오지, 방값을 제외하고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런데 이사 날, 작은 트럭 하나 가득 실어진 물건들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요. 냉장고, 밥솥, 밥그릇, 밑반찬이며 휴지까지... 뒤에서 하나 하나 준비해 주신 선생님들,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저희가 이렇게 멋지게 지내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저희를 지켜보는 모든 분들은 잘 기억하세요.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아니 남부럽지 않게 살 거예요. 선생님들의 기대 절대로 저버리지 않을거구요. 비록 지금은 고등학교 막 졸업한 취업생이지만 선생님들, 제 꿈 아시죠? 저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요. 소미도 하고 싶어하는 것은 꼭 이룰 꺼 구요. 잠깐만, '소미 꿈이 가수니깐 그럼 나는 매니저로 뛰어야 하는 건가?' 하하~~~

선생님들, 저희 가끔씩 놀러 가면 반겨 줄꺼죠? 선생님 곁에 없다고 잊어버리지 마세요. 저희는 죽을 때까지 이곳 열림터의 생활을 잊지 않을거예요.
상담소 선생님들, 아니 상담소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께 다시 한 번 인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저희 사는 거 살짝만 지켜 봐주세요. 그럼 세상 사는데.. 정말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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