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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후기] "한국의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와 쟁점" - 보라 본문
[강의 후기] "한국의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와 쟁점" - 보라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 2019. 4. 19. 11:31지난 1월, 상담소 활동가들이 열림터에서 성인권교육을 진행했습니다. 1강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의 "한국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와 쟁점" 이었습니다. 열림터 식구들이 강의를 듣고 쓴 후기를 올립니다.
2019년 1월 21일, 보라
우선 한국의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정보는 직접 찾아보지 않는 한 따로 배우지 않는 내용이라 이렇게 연도별로 정리한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 미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미투 운동은 최근 우리나라의 가장 큰 이슈였다. 미투는 성폭력 피해자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운동이며, 시작은 SNS에서였다. 누구나 쉽게 어디서든 접할 수 있다는 SNS의 특성 덕분에 그 시작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쏟아지는 수많은 미투 속에서 이 운동이 과연 영향력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나는 피해자가 당당하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백하며 가해자를 고발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낯설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사회는 변하고 있고, ‘미투’와 ‘위드유’라는 연대의 흐름은 세계로 뻗어나가 일본에서도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 (마찬가지로 SNS를 통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일본의 여성 인권은 우리나라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미투 운동은 실패로 끝났다고 한다.) 세계로 확산된 미투를 통해 생존자들은 연대하고 있었고, 우리나라의 미투 운동의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음을 느꼈다. 생존자가 내는 목소리를 많은 사람들이 듣고, 사회가 듣는다. 물론 생존자의 말에 반박하는 의견도 많다. 그러나 듣는 귀가 생겼다는 건,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 침묵해야만 했던 생존자의 목소리가 세상에 닿게 된 것이다.
강의를 들으면서 놀랐던 점은 이러한 미투가 최근에 시작된 게 아닌 오래된 운동이라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반성폭력 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당연시 여겨졌던 여성에 대한 착취의 부조리함을 깨닫고 이를 바꾸고자 했던 사람이 오래 전에도 있었다는 점, 또 하나는 오래 전부터 반성폭력 운동이 일어났었음에도 여전히 여성 인권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과거의 미투는 어땠을까? 1955년 박인수 사건의 1심에서는 정조를 지키지 않은 여자를 보호해 줄 법이 없다며 무죄 판결이 나왔다. 1988년에는 성추행범의 혀를 절단한 피해자에 대해 역으로 성추행범이 피해자를 고소를 하는 일이 있었다. 1991년 피해자가 21년 전 자신을 강간했던 가해자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으며 그 당시 친고죄는 6개월 이내에 고소를 해야 했다고 한다. 1992년 13년간 의붓아버지에게 강간당했던 피해자와 그의 남자친구가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으로, 사람들에게 워낙 큰 충격을 안겨줬던 사건이라 나도 알고 있는 사건이었다. 당시에는 직계존속은 고소할 수 없었다는 설명을 듣고 섬뜩하기까지 했다. 이후 성폭력특별법 제정운동이 1991년부터 1993년 사이에 일어났다. 1993년 서울대 화학과 교수가 조교를 성희롱한 사건이 발생했으나, 당시 성희롱이라는 용어가 없었기 때문에 피해자는 ‘행복추구권 침해’로 민사소송을 했다. 긴 싸움이 시작되었고, 다행히 사건 이후부터 성희롱 예방교육이 의무적으로 실시되었다고 한다.
끔찍한 성희롱‧성폭행 사건들 속에서 1991년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개소되었고, 1994년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열림터’가 개소되었다. 상담소가 개소한 이후로 지금까지 수많은 운동이 이어졌다. 뜨거웠던 현장의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치솟았다. 이 복잡한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생존자를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사회에 도전하고, 편견에 맞서는 많은 분들의 존재가 위로가 된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이해받을 수 없었으며, 영원히 치유될 수 없다는 오래된 무력감과 외로움이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고, 도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게 힘을 보태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 사실이 위로와 용기가 되어 준다.
2019년 미투 예산은 전체 예산의 0.01%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 안희정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무죄 판결의 내용 중 ‘장애인도, 아동도 아닌 결단력 있는 고학력 여성이 왜 네 번이나 당했는가’ 라는 질문은 사회가 여전히 생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윤택은 “당시 피해자가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의 고통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두 사건 모두 가해자의 위력행사가 존재한 성폭행이었으나 전자는 무죄, 후자는 6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안희정이 무죄라는 법원의 판결은 모두를 분노하게 만든 어처구니없는 판결이었다. 왜 가해자를 처벌해야 하는 법이 오히려 가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에게 감정이입하고, 가해자의 편이 되어 주는 걸까? 법이란 뭘까? 심지어 아동 성추행이나 성폭력 사건을 무죄 판결 받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며 대놓고 광고하는 변호사들도 많다고 한다. 절망적이었다. 생존자를 괴롭히는 것은 또 있었는데, 성폭력 이후 2차 피해의 고통 역시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조두순 사건의 수사과정에서의 2차 피해를 인정받았지만 10년이 지난 현재에도 2차 피해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예시로 만화가 윤서인은 조두순 성폭행 사건 피해자를 조롱하는 듯한 내용이 담긴 만화를 게재하여 피해자의 가족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바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 여성 인권의 위치를 다시금 확인할 때마다 무력해진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피해를 당하던 그때와는 다르다.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생존자에게는 힘이 있다. 가장 밑바닥까지 고꾸라져 본 사람은, 빛을 잃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해 봤던 사람은 더 이상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일단 살아남으면 가해자마저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생명력이란 그런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힘을 믿는다. 살아있기만 하면 강한 생명력이 생존자를 빛으로, 비옥한 땅으로, 치유의 길로 이끌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과정을 기꺼이 함께 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실 분들이 많이 계신다. 연대라는 이름 아래 생명력이 하나 둘 모이게 되면 힘은 더욱 강해진다. 미투 운동의 오래된 역사를 보며 확신이 생겼다. 재판에서 승소하거나 패소하는 것과 상관없이 이 싸움에서 가해자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누구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치유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치유로 이어지길 바란다. 그럴 수 있다면 얼마든지 내가 어떤 일을 당했고, 어떻게 살아남았으며,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세상을 향해 외칠 것이다. 드러낸 생존자와 죽은 듯 숨죽여 지내는 생존자 모두에게 혼자가 아님을 알리고 싶다. 앞으로의 과제는 행동하는 주변인 즉, 우리 스스로의 일상과 활동을 성찰하고 실천하며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말씀이 사명처럼 가슴에 와 닿았다. 침묵하지 않고, 못 본 척 하지 않고, 기부와 운동에 참여하며 힘을 보태는 등 행동하는 사람, ‘행동하는 생존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