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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터 식구들의 목소리/식구들의 감상

지우, "집으로 가는 길"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 2019. 9. 25. 12:24

"집으로 가는 길" - 열림터 25살 생일잔치 후기

 

지우

 

  열림터는 내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어 준 공간이다. 누구에게나 의무적으로 가장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야 할 가정에서 온갖 학대를 당하고 갈 곳이 없던 나를 받아주고 키워준 공간이기도 하다.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준 공간이라는 것은 메말라 있던 내 삶에 물을 뿌려주고 내 안에 있는 자아를 일깨워준 공간이라는 말이다. 열림터는 내게 집 아닌 집이다. 돌아갈 곳 없는 내게 손을 내밀어주고,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세상위에서 퉁하고 튕겨져 나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절대 혼자가 아니라고 보듬어주는 곳. 퇴소를 한 이후에도 열림터는 내게 같은 공간으로 남아있다.

 

  기다리던 열림터의 생일파티가 올해 921일에 열렸다. 열림터가 만들어진 날을 축하하는 의미에서라면 기꺼이 방문할 의사가 있었다. 각기 다른 시기에 열림터에 거주했던 생활인들이 모여서 어떻게 사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했다. 별 거 아닌 시간 같아 보일 수 있겠지만 생존자들끼리 만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쉽게 나눌 수 없는 일이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언제나 생존자들을 생각해주시고 도움을 주시는 활동가 선생님들게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함께 시간을 나누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서 때로는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득한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나에게는 열림터라는 장소가 그 의미를 충족시켜줬다. 식사를 하고 난 이후에는 각기 다른 시기에 열림터에 거주했던 생활인들끼리 팀을 만들어 모여서 여러 가지 게임을 했다. 게임은 주로 열림터에서 생활했던 때에 관련된 주제들이었다. 게임을 하면서 열림터는 언제나 생활인들에게 정겨운 공간이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다른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이 모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힘은 열림터에 대한 애정의 힘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생활인들의 마음에 진득히 남아있는 열림터라는 공간은 참 대단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에는 예쁜 케이크에 불을 붙여서 다 같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를 나눠 먹고는 열림터 생일파티를 마무리 했다.

 

열림터 25살 생일을 축하하는 케이크

 

사람도 아닌 열림터라는 공간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을 담아서 노래를 부르고 감사를 표한다는 것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열림터라는 곳이 그 공간에 있던 생활인 모두에게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는 공간이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사람이 존재할 공간이 있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갈 곳 없는 영혼을 위로해주고, 그 공간 안에서 위로 받고 추억을 쌓는 것은 사람의 인생에 큰 여운으로 자리잡게 된다. 어쩌면 열림터라는 곳은 누군가에겐 현재로, 누군가에겐 과거로 진득한 여운으로 남아있는 그리움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내게 유일한 집으로 남아있는 열림터에게 고마움과 애정의 표시를 보낸다.

 

  또한 열림터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많은 사람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들이 하루 빨리 안전하게 보호받길 기도한다. 내가 열림터를 거쳐가며 얻은 자유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나를 소중히 여기는 생존자가 될 것이다. 모든 생존자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