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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숙직 일기

여름 밤의 숙직일기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 2021. 8. 2. 11:00

취침시간 5분전 폭풍양치질에 고양이세수를 하고 헐레벌덕 각자의 침대로 향한다.

 

코로나19로 세상도 일찍 잠든다. 여느때 같으면 지금쯤 취객의 고함소리와 쓰레기 수거하는 소리가 요란했을 텐데 오늘은 가끔씩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와 뜨거운 열기만이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각자의 침대에서 잠은 잘 들었을지? 무슨 생각을 하며 잠을 청하고 있을지를 생각해본다. 잘 살고 있는 가해자를 보며 화내고,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는 가족에게 섭섭하고, 내맘처럼 돌아가지 않는 세상에 힘든 하루를 보낸 친구들... 내집이 아니라 맘도 편하지도 않을테고 ... 어떻게 하면 있는 동안이라도 편히 긴장하지 않고 지내게 할 수 있을까 ?

 

몇몇 또우리(퇴소자)들이 생각난다.

 

어쩌다 열림터를 방문할때면 생활인들용 과자나 여행지에서 산 특산품을 사다주기도 한다. "애기들주라면서...

그들에게 애기란 단지 육체적인 나이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피해로 힘들었던 과거 자신들의 모습일 것이다.

 

누가 애기냐고 너도 애기라고 말해보지만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젠 자신들이 열림터 생활인들을 애기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들을 보듬어 주고 싶다는 마음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자신들을 안아주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아직은 불편한 잠자리일지 몰라도 언젠가는 이들도 자신의 어린 애기를 챙겨줄 수 있는 시기와 세상이 오길 바래본다.

 

                                                                      열림터 활동가 으니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