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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터 식구들의 목소리

수박은 달았다.

열림터 2013. 7. 22. 09:11

이 글은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생활인 은수가 만든 책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 우리 집에는 인간으로 둔갑한 괴물이 살고 있어요.>

 

 

 

“야! 그만 쳐 자!”

눈을 떴다. 아빠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며 일어난다. 현실인가 보다. 꿈속에서 동생과 풍선을 타고 놀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아빠의 고함이 더욱 크게 들려온다. 어제 두들겨 맞은 탓인지 온몸에 감각이 없는 듯하다. 이불에서 겨우 나온 다음, 화장실로 갔다. 아빠는 TV를 보며 웃고 있다. 눈이 마주칠까봐 눈을 내리깔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거울을 본다.

반쯤 풀린 눈에 입꼬리가 축 쳐져 있다. 애써 웃어보려고 입꼬리를 손으로 올려본다. 나는 거실로 나가고 싶지 않아 화장실 문고리만 하염없이 보고 있다. “은수야 밥 먹어” 엄마가 나를 부른다. 화장실 문을 조심스럽게 연다. 아빠는 이미 수저를 들고 밥을 먹고 있었고 동생은 아빠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깨작깨작 밥을 먹고 있다. 나는 아빠 앞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한다. 밥상 앞에 앉는다. 수저를 들고 밥을 보니 내가 싫어하는 콩밥이었다. 원래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지만, 아빠가 억지로 먹이고 나서는 콩밥이 너무나 싫었다. 수저가 너무 무거워 진 것 같다. 나는 생각한다. ‘먹지 않으면 나는 아빠에게 죽는다.’ 라는 생각에 밥을 억지로 입에다 구겨 넣는다. 구역질한다. “야 이년아 미쳤냐?” 피가 거꾸로 솟는 거 같다. 동생은 나를 힐끔 쳐다본다.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려 한다.

식사를 먼저 마친 아빠는 밥그릇에 물을 가득 딸고 물을 들이킨다. “꺼억”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제야 나는 밥을 편하게 먹는다.

 

오늘은 비가 오는 날이라 아빠는 장사를 안 간다. 나는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 싫었다. 나는 뉴스에 나오는 일기예보 언니들이 밉기까지 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아빠와 마주치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항상 내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욕을 덜 먹을까, 어떻게 하면 덜 맞을까 생각이었다. 밥을 다 먹은 나는 최대한 아빠한테서 떨어지기 위해 내방에서 책을 폈다. 나는 내가 공부를 할 수 없는 머리라고 생각하기 전에 아빠는 내게 말했다.

“그 머리로 무엇을 하겠냐? 미친년아. 그냥 공장에서 일이나 해.” 그래서 나는 포기했다. 그냥 공부라는 것은 덜 맞기 위한 방법의 하나였다.

나는 아무렇게 펼쳐져 있는 책에 낙서한다. 동생은 내 옆에서 낙서를 보면서 해맑게 웃어 보인다. 동생 눈에 그늘이 심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어제 일 때문인지 잠을 제대로 못 잔 거 같다. 어제 동생을 안심시키려고 안아주었는데 소용이 없는 거 같아 보였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재빨리 자기 자리로 돌아가 공부하는 ‘척’을 하였다. 아빠는 우리에 장난을 눈치를 챘는지 내 머리와 동생 머리를 사정없이 갈겼다. “닥치라고 쌍년아.” 난 이 상황을 매번 겪는 일이지만 고통은 배로 늘어가는 듯했다. 나는 귀가 차라리 안 들렸으면 했고, 내 눈이 보이지 않길 바랬었고 고통을 느낄 수 없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가 무서운 눈으로 나를 볼 때부터.

 

아빠는 집에선 왕이었다. 왕보다는 링에서 격렬하게 싸우는 격투기 선수가 적절하겠다. 아빠가 싸우는 경기에선 심판도 없고 규칙도 없었다. 아빠가 곧 심판이었고, 아빠가 곧 규칙이였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몇 대 맞고 욕을 한참 듣고 나서 아빠는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아빠가 이렇게 다녀가면 내 몸은 힘이 빠져 버린다. 안방에선 아빠와 엄마가 대화를 나누는 거 같다. 웃음소리가 들린다. 남의 집에 온 것 같다. 아빠가 우리를 부른다.

“과일 먹어.” 평소 같았으면 먹이기도 아까워 했을 텐데 오늘따라 아빠가 친절을 베푼다. 오랜만에 먹는 과일이라 맛있긴 한데 아빠가 이렇게 나에게 친절한데 이유가 있을 거 같아 아빠 얼굴과 잘라 놓은 수박을 번갈아 보며 수박을 먹는다.

 

수박이 오늘따라 참 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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