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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그렇게 꿈을 꾼다. 본문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그렇게 꿈을 꾼다.
-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북콘서트를 보고 나서......
한별
내가 처음 성폭력을 당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 때는 성폭력이 뭔지 몰랐고, 내가 겪고 있는 것을 잘 몰랐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학교 동아리의 아는 언니에게 처음 이야기를 했고, 아는 동생의 이모인 학교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재혼을 하셨다. 우리 가정은 잘 사는 편은 아니었지만 화목했고, 살 것은 사고 외식도 자주 했다. 가족들과 배드민턴을 치기도 하고 놀러가기도 하는 단란한 가정이었다. 성폭력을 당하기 전까지는 괜찮은 가정이었고, 또 성폭력 이 시작된 후에도 그것 이외에는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아버지가 용돈도 잘 주시고 항상 내 편이 되어 주시고 학교도 데려다 주셨다. 그렇게 좋은 기억들이 남아있다.
기독교인인 나는 교회에서 “원수를 용서하라. 용서하고 또 용서하라”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기에 성폭력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분노를 가졌음에도 항상 용서, 용서를 외치며 성폭력을 견뎌냈다.
나는 마치 내 잘못인양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용서를 외치며 진짜 용서가 아닌 가짜 용서를 하고 있었다. 진짜 용서란 그 사람이 잘못을 했다면 벌을 받게 하고 그 잘못을 완전히 뉘우쳐야 가능한 것일 텐데 그걸 미처 몰랐고, 나만 괜찮으면 되겠지 라는 생각에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살았다. 그건 가짜 용서였다.
난 집을 나올 용기나 자신도 없었고 자립할 능력도 없었다. 나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정말 이건 안 될거야’ 라고 생각했던 것도 시도를 하나보다.
집을 나올 생각을 하면서 그동안 알고 지냈던 친구들과, 교회 분들과, 아는 언니와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이 사람들과 헤어져야 할 텐데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 고민도 많이 했다. 집에서 나오기 전 날까지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했는데도, 난 집을 나올 자신이 없었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집을 나오고 나서도 ‘내가 결국 질렀고 집을 나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후회도 되어서 감정이 복잡했다. 정말 불안하고 초조한 가운데 용기를 냈지만 너무 외롭고 견디기 힘들었다. 다시 집에 돌아가고 싶었지만 하루하루 견디다 보니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아버지를 신고하고 집을 나오면서 내가 하고자 했던 일들, 계획이 다 무너진 느낌이어서 완전히 내가 바닥으로 내려간 것 같았다. 졸업하면 집을 나올 생각이었고, 자유롭게 하고 싶었던 것도 많이 계획해 두었었다. 친구들과도 더 깊이 있는 우정을 나누고 싶었고, 교회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도 싫었었는데, 헤어져야만했다. 집은 진흙탕 같았다. 나는 진흙탕을 나오긴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서 힘들었다.
그 후에 신고를 하고 나서 난 정말 많이 울었고 죄책감도 들었다. 성폭력은 내 잘못이 아니고 내가 용기를 내어서 신고한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혼란스러웠고 양가감정도 들었다. 아버지가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 한 켠에서는 부담이 되었다. 지난 3월에 있었던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북콘서트에서 독자와의 대화 시간에 이런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때 저자인 은수연님이 아버지를 용서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라고 해서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그리고 “다른 가족들하고 어땠나?”라고 내가 질문했을 때, 은수연님이 가족들도 나중엔 편히 연락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기가 올 거라고 말해주셨다. ‘과연 그런 날이 올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엄마에게 털어놓았을 때, 엄마가 내 이야기를 들으면 같이 집에서 나올 줄 알았는데 어쩜 그 상황에서 그렇게 남아계실 수 있는지, 서운했고 원망스러웠다. 집을 나온 후에 엄마한테 오는 연락에도 신경이 많이 쓰였고 엄마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엄마가 지금 힘든 시간들을 보내시고 있다고 한다. 나 못지않게…….
하지만 나만큼 힘들 수 있을까. 난 지금 혼자이고, 수많은 복잡한 감정들을 다스리면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엄마를 만나게 되면 서먹할 것 같고 힘들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편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좋은 날이 오기를 바란다. 엄마와 내가 그 고통을 마주하고, 견디고, 미안함과 여러 복잡한 감정들을 잘 견뎌내고 치유하고 나면 서로 편하게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은수연님께 질문을 하고 답을 들으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재판에서 아버지가 인정했다고 했을 때 나는 그냥 그대로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난 아버지가 잘못을 인정하면 끝나는 건 줄 알았고, 더 이상 나도 아버지도 힘들지 않게 끝내고 싶었다. 법정에 데려간 것, 이 정도라면 아버지에게 따끔하게 혼내준 거라고 나 혼자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재판이 더 남아있고, 그 과정을 지켜보고 견뎌야 하며,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것들이 나를 몹시 힘들게 한다.
은수연님의 책을 보면서 앞으로는 내 마음을 글로 정리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몇 번 쓰다 보니 말로 하기 어려운 것들도 정리되는 것 같다. 이렇게 나의 마음을 글로 쓰면서 내 마음도 추스르고 정리할 수 있어서 좋다.
북콘서트에서 은수연님의 밝은 모습에 에너지를 많이 받았고 그동안 힘들었지만 툭툭 털고 다른 생존자들을 위로하고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신 것 같아 너무 존경스러웠고 멘토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콘서트가 끝나고 나서 책에 사인을 받을 때 적어주신 말처럼 나도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내가 흘렸던 눈물들도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서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