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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4차 세계여성쉼터대회 (4WCWS) 그 두 번째 날! - 2 본문

열림터가 만난 고민들

[후기] 4차 세계여성쉼터대회 (4WCWS) 그 두 번째 날! - 2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 2019. 12. 18. 10:09

4차 세계여성쉼터대회 (4WCWS), 그 두 번째 날! - 2

DAY 2, 본회의(2) Art and Advocay


 

Plenary 2. Art and Advocacy

 

백목련: 난 사실… 매일 첫 프로그램들이 8시 15분에 시작해서 일찌감치 포기했다. ‘꼭 듣고 싶어!!!’ 이런 주제도 아니어서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9시 30분쯤 어슬렁, 어슬렁 등장했다. 매우 부지런한 수수가 대신 잘 들어주겠지 하면서… 대신 엄청 많이 챙겨간 상담소 브로셔를 빨리 없애기 위해서 열심히 부스마다 돌며 자기소개하고 교류하는 활동을 했다. 없던 사회성이 짐을 줄이기 위해 생겨난 순간이랄까?

 

4WCWS 공식 홈페이지 사진 코너에 올라온 내 모습. 뭔가 표정이 심각해 보이지만 가방에 묵직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브로셔를 어떻게 빨리 해치울까 싶어 여러 부스를 다니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공식 출장 인증샷!  출처 ㅣ 4WCWS 홈페이지

 



수수: 나도 사실 8시15분에 시작되는 일정이 매우 부담스러웠지만, 출장으로 왔다는 부담감이 더 컸던 거 같다. 아침에 눈이 번쩍 떠 진 걸 보면 ㅋㅋ. 플래너리 2는 예술과 지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로마> 예고 영상을 보여주면서 시작했다. 나는 <로마>를 안 봤는데, 예고편을 보니까 너무 궁금해졌다. 그리고 <로마>의 배우인 Yalitza Aparicio Martinez 가 “어릴 적 나는 ‘여자애가 공부해서 뭐해, 축구하지 마, 부엌에나 가’, 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로 발언을 시작했다. 여성의 능력을 특정한 공간에 한정하는 이 발언들은 이제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겹다고 생각될 정도이다. 이 지겨운 말에 대한 증언들을 언제쯤 하지 않는 사회가 될까? 

 

백목련: 9시 30분에 시작한 교육 관련 세션에서  소녀들에게는 젠더 고정관념이 덜 적용될 수 있도록 사람들이 애쓰지만 소년에 대해서는 아직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래도 과거보다는 여성운동 진영 밖에서도 성인지 감수성을 발달시키려 노력하고 애쓰는 동료들이 많아져서 고립되고 있다는 생각은 덜 드는 것 같다. 

 

수수: 이후 패널리스트 대담이 있었다. 예술과 사회운동(여성운동)을 접목시킨 사람들의 대담이었다. 한국에서 최영미 시인이 와서 “예술 그 자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문제를 우리 삶 안으로 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지닌다.”는 발언을 해주셨다. 하지만 예술은 종종 NGO가 접하기에는 비싼 영역이기도 하다. NGO가 제공할 수 있는 돈이 한정되어 있을 때, 예술가에서 열악한 조건으로 협업을 요청하게 되는 경우가 잦다. 열악한 이들끼리 서로 착취하게 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NGO와 예술인들의 재정규모, 노동조건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 

 

백목련: 25주년 기념 포럼을 준비하면서 열림터에서 그간 진행해 온 생활인 대상 프로그램을 보니 지금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는 예술인들과 협업한 내용이 꽤 많았다. 생활인들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자기 표현을 연습하고 예술인들은 더 섬세하게 생활인들의 경험을 예술에 녹여낼 수 있게 되었지 않을까? 작년에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통해서 예술인 파견 사업으로 상담소와 협업을 했는데 이런 사업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첫 번째 워크샵 (9:30 - 11:00)

 

수수: 9시30분부터 워크샵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플래너리를 듣고, 워크샵을 하게 되다니! 머나먼 이국땅에서! 근데 당시에는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 와서 뭔가 긴장하고 신나 있어서 그랬던걸까… 

 

백목련: 하지만 수수는 이 날 너무 무리해서 다음 날 카페인으로도 회복되지 않는 피로와 싸워야 했지! ㅋㅋㅋ

 

수수: 나는 301호에서 “Radical Self-Care for Shelter Staff and Advocates”(쉼터 스태프와 지지자들을 위한 급진적 셀프케어) & “Trauma-Informed Care: The Missing Link to Healing”(트라우마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 케어 : 치유로의 길을 완성하는 연결고리) 을 들었다. 

 

 

사실 워크샵 주제를 완전 잘못 이해하고 들어갔었다. 쉼터에 입소인 치유회복지원 시 트라우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인줄 알고 들었다. 그런데 쉼터 실무자를 위한 셀프케어와 쉼터 실무자의 대리외상에 관한 세션이었다. 우리가 좀 더 자주 쓰는 말로는… 종사자 소진 예방에 관한 워크샵이었달까? 

 열림터에서 일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소진은 나와 먼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아차, 잘못 들어왔구나’ 싶었는데… 의외로 생각해볼 지점을 많이 던져주는 세션이었다. 제일 흥미로웠던 것은 ‘실무자 사례회의’였다. 우리가 지원하는 피해자 사례회의는 많이 하지 않나. 그런데 그들을 지원하는 실무자들의 상황도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고, 이들이 소진되지 않게끔 동료들의 수퍼비전 속에서 사례 회의를 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회 변화와 정의를 위해 활동하면서, 대리 외상을 입거나 직접 트라우마를 겪게 되는 일이 빈번하다. 

 

백목련: 수수가 올해는 신입활동가이기도 하고 25주년 포럼 담당자여서 사례 관리를 안 해서 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실무자 사례회의’처럼 시스템으로 만들어져야 할 것 같다. 최근에 경향신문에서 활동가 소진과 관련한 기사 2가지가 나왔는데, 가치를 지향하는 일에서 활동가 개개인들의 역할이 크고 책임감, 사명감으로 일하면서 자기 상태에 대해 소홀하게 되는 것 같다. 

 

[커버스토리]공익활동가 삼키는 늪… ‘번아웃’, 김민아 선임기자, 2019/11/23,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1230600105&code=940100 
 [커버스토리]“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려…거동 못할 정도 돼야 ‘아프다’ 여겨”, 김민아 선임기자, 2019/11/23,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1230600115&code=940100#csidxe490e0ff1195917a313d3252ff85c99 

 

수수: 발표자는 ‘왜 이렇게 뛰어난 실무자들이 몇 년마다 갑자기 운동에서 사라질까?’ 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소진 예방의 중요성에 대한 워크샵을 꾸리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왜 다들 운동에서 사라질까?’ 란 질문에 발표자가 제시한 답은 ‘소진 지원 시스템과 툴이 없기 때문’이었다. 소진 예방과 회복 시스템이 없을 때는 소진된 실무자들 스스로가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떠나게 될 수밖에 없다고... 

소진된 사람은 주변인과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원래 가지고 있던 능력을 발현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진은 활동가들이 운동에서 떠나게 만들기 때문에도 문제며, 피해생존자에 대한 적절한 지원을 저해하기 때문에도 문제이다. 그렇기에 각각 실무자들이 소진되지 않을 수 있도록 그 상태를 잘 파악하고, 소진되었다면 그 사인을 잘 캐치하여, 어떻게 하면 좋을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워크샵 논지였다. 

실무자 모의 사례 회의도 해봤다. 엄청 소진된 director(소장?)에 대한 사례회의였다. 이 디렉터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미뤄두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벌이고, 주변 활동가들과 계속 마찰을 빚는 중이라고 했다. 아주 세세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했다. 평소에 매우 건강했었는데 최근 병원에 몇 회 방문했다는 것까지 쓰여있었으니까! 청중 의견을 받는 형식으로 워크샵 참가자 전부가 다 같이 사례 회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현 상황에서는 디렉터가 마이크로매니저처럼 보일 수 있고, 자신을 너무 확장하려고 하고 있으니 ‘나는 혼자 다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업무를 재배치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회의의 대상자가 나라고 생각하면 좀 발가벗겨지는 기분도 들면서도, 동료들에게 케어받는다고 생각하면 든든할 것 같았다.

 

백목련: 주로 대표자 역할은 하는 활동가들이 새로운 일들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많이 받는 것 같다. 모의 사례인데 몇 몇 활동가들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우리도 동료 슈퍼비전을 본인 업무에 대한 조언 말고 활동가의 활동 전반에 대해서 함께 논의할 수 있게 도입해 보면 어떨까? 상담소도 점차 장기근속하는 활동가 수가 늘어나고 있는데 꼭 해보면 좋겠다. 근데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하기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겠다 싶다. 

 

수수: 또 셀프케어에 대한 굉장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만, 그 시장 속에서 우리는 케어받는단 느낌을 받지 못한단 슬픈 사실도 지적했다. 굉장히 동감했다. 힐링이 남발되던 때가 있었다. 힐링 상품들을 소비하면 치유된다는 서사가 만연했다. 이런 방식으로는 힐링, 치유, 쉼이 필요한 구조에 접근하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래디컬한 셀프 케어가 필요하고, 이 셀프케어는 공동체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워크샵의 또 다들 논지였다. 첫 워크샵이 흥미로워서 다른 세션들에도 기대가 커졌었다.

 

백목련: 나는 이때 어떻게 교육을 통해 남성을 젠더 기반 폭력을 막는 주체로 참여시킬 수 있을지 발표하는 세션에 참여했었다. 홍콩, 캐나다, 대만의 발표자들이 각자의 연구와 사례를 나누었다. 홍콩에서는 소녀에게는 분홍과 파랑을 모두 사용하고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사람들이 인식하는데 유독 소년에게 분홍색 사용과 여성성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제시하였다. 이런 성태도는 성인 세대가 자녀를 양육할 때 영향을 미치고 대학생 대상 성평등 지표에서 성별 격차가 생기는 지점이 연결된다. 더욱이 친밀한 관계 내 폭력을 경험한 사람 중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여성에게 대학생들에게 한 것과 동일한 설문을 했을 때 여자 대학생보다 성인지 감수성이 낮고 남자 대학생보다는 높지만 성역할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 보수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성/가정 폭력 피해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성적인 트라우마만 생각하는데 성인지 감수성이나 양육 태도 등 생활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될 것 같다. 

 

수수: 디저트 가게에 남자 둘이 못 간다는 말을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여성은 남성성에 접근하기 좀 더 쉽지만, 남성의 여성성에 대한 금기는 좀 더 큰 것 같다. 여성의 것, 혹은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천대하는 문화 때문일 것 같다.

 

백목련: 캐나다의 발표는 앨버타 주 여성쉼터협의회(Alberta Council of Women’s shelters, ACWS; www.acws.ca)에서 젠더폭력의 근본적 예방을 위해 했던 활동(Leading Change) 중 스포츠계 코치와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활동을 소개해 주었다. 우리나라 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폭력예방교육 할 때 방관자되지 않기 목표로 활동지로 구체적인 상황과 방법을 고민하게 하는 방식과 비슷했다. 

 

 

백목련: 젠더 기반 폭력은 피라미드형태로 성차별적이거나 성소수자 혐오적인 농담이나 언어 사용, 대상화를 바탕으로 윗 단계로 발전한다고 지적한 점이 흥미로웠던 것 같다. 교육할 때 이 피라미드를 보여주면서 우리가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거대한 변화를 바로 만들어 내야 하는 게 아니라 바닥을 균열시키는 데 동참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 쉽게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

 

수수: 운동의 목표는 크지만, 실제로 눈에 보이는 성과나 승리는 미미할 때가 많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균열지점들을 잘 파악하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백목련: 대만에서는 리신사회복리사업기금회(勵馨事會福利事業基金會, The Garden of Hope Foundation; https://www.goh.org.tw/en)에서 진행한 V-Men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남자 대학생들이 공통적인 경험으로  남자답게 커야 한다며 체벌을 통해 남성성을 훈육 받아서 폭력을 남성성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마초 남성성 외에 대안적인 남성성이나 아버지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특히 이성애 정체성을 가진 남성들이 대안적인 남성성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는데 남성도 연약할 수 있다, 감정표현 할 수 있다고 배워도 노동 시장에서 용인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취약해 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V-Men 프로젝트는 ‘왜 여성단체에서 남성 관련 활동은 없을까?’ 라는 고민에서 젠더폭력을 없애기 위한 남성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고안한 활동이라고 한다. 작년에는 모두 하이힐을 신고 거리로 나서거나 장을 보면서 여성의 경험을 해보는 퍼포먼스를 벌였다고 한다. V-Men의 활동지침은 ① 평가 말고 칭찬하기, ② 주먹질하지 말고 안아주기, ③ 성폭력 막고 성구매 하지않기, ④ 성희롱하지 말고 농담하기, ⑤ 여성에게 친근하게 대하기로 전형적인 남성상이 가지는 한계를 벗어나고자 한 것 같았다. 

 하이힐 퍼포먼스를 보면서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여성의 경험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예전에 영화 미씽을 연출한 이언희 감독이 워킹맘인 지선의 피로감을 보여주기 위해 행사 중에 하이힐을 살짝 벗는 장면을 촬영했는데 남성 스탭들이 그 장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 한참 설명해야 했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굽이 높은 신발을 신으면 발바닥부터 발목까지 고단할 수 있고 그래서 발의 긴장을 덜기 위해서 잠깐씩 벗기도 한다는 게 설명씩이나 필요한 일일까? 여성으로 산다는 건, 그야말로 남성으로 대표되는 대중과 유리된 경험이라는 게 아닐까? 싶어서 서글퍼진 적이 있다. 어떤 경험을 공감할 수 있는 영역으로 받아들이는가, 아닌가도 성별화 된 결과인 것 같다. 이런 와중에 왜 여성성은 늘 고통과 긴장을 동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어떻게 갈 수 있지? 우리 사회도 젊은 세대일수록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성별 격차가 두드러지는데 그래서 더 남성이 폭력을 방관하지 않고 성평등을 위한 자기 역할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할 것 같다. 아, 매일 해야 할 일은 눈에 보이고 우리 몸은 한 개씩 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지… 





수수: 종종 열림터를 ‘불우한 경험을 한 개인’을 돕는 곳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 이들은 쉼터, 그러니까 피해자 직접지원이랑 남성성이 무슨 상관이냐고 물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의 존재는 남성성, 가부장제, 성별화 된 폭력과 밀착되어 있다. 쉼터에서 지원하는 생존자들의 경험을 더 많이 공유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각국의 쉼터 활동들을 이 포럼에서 만나면서 앞으로 할 일에 대한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런데 목련 말처럼 우리 몸이 한 개네... ㅋㅋㅋㅠ

 

(두 번째 날은 너무도 알찼던 관계로 2회에 나누어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