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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사는 이야기/숙직 일기 (25)
열림터
여러분은 어떤 재미로 사시나요? 먹는 재미로 사시는 분~ 열림터는 먹는 데에 진심인 사람들이 많답니다. 먹는 재미가 사는 재미로 이어지는 거 아닐까 생각해보아요. 열림터의 냉장고 보드에는 항상 먹고 싶은 식재료로 가득 채워져 있어요. 함께 식사하는 저녁 식사 당번도 생활인과 활동가가 돌아가며 하는데요, 열림이들과 먹은 요리들을 소개해 드릴게요. 고추참치비빔밥x장조림x김치찌개라는 천재적인 조합! 쏟아지는 빈 통조림에 급히 준비한 티가 나지만 마요네즈까지 곁들여 그릇을 싹싹 비우게 해준 생활인 A의 작품입니다. 생활인 B는 수육도 할 줄 안답니다! 레시피를 보고 우왕좌왕하던 모습을 본 생활인 C가 도움을 주어 부드러운 작품을 선보여주었습니다. 열림이들은 과일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과일을 깎는 것은 귀찮기도 ..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될 줄 몰랐습니다. 숙직 날이면 내가 교원자격증을 땄던가? 싶을 정도로 "쌤~"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한 번도 선생님으로 부르라 한 적 없지만,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우리 관계에 이 호칭... 괜찮은걸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여간, 숙직하게 되면 하루 종일 생활을 함께하니 잔소리와 지시 사이의 어떤 말을 평소보다 더하게 됩니다. "쌤"으로 불리는 판이라 잔소리로 들릴까봐 '말할까, 말까?' 몇 번 되감아 보고요. 그럼에도 연달아 말문이 터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미묘하게 불편한 그 상황을 웃음바다로 물들인 이가 있습니다. #1. A: 낙타 쌤 파스타 소스 병 좀 따주세요. 낙: 됐다! A: 와... B, 어떻게 생각해? B: 강하다고 생각해. ..
저는 구글 캘린더를 애용하는 MBTI(성격유형검사)에서 J(계획형)인간입니다. 어릴 때부터, 기억나는 한 9살 정도부터 다이어리를 쓰면서 일정 쓰거나 계획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만 변덕이 심한지라 일정이 자주 변경되어 지우고 다시 쓰기가 용이한 것을 찾다 보니 구글 캘린더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00월 00일 토요일, 열림터에 들어오고 처음 하는 주말 숙직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 전날 하필 회식이 있는 날입니다. 상담소 전체 회식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어서 놀기 좋아하는 저는 오래오래 놀고 싶었지만, 이성을 잡고 구글 캘린더에 이렇게 작성해봅니다. ‘내일 숙직을 위해 일찍 귀가’ 그리고 그 시간을 오후 7시로 지정해봅니다. 그냥 칼퇴근한 것이나 다름없는 회식 날이었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뒤로 하..
잔소리, 좋아하시나요?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싶지만, 저는 잔소리가 정말이지 싫은 사람입니다. 원가정에서 수많은 잔소리를 듣고 자랐거든요. 예컨대, 걸음걸이 하나하나에서부터 “등을 쫙 펴고 걸어라”, “머리는 뿌리부터 말리고 뻗치지 않게 안쪽으로 말아서 두어라” 와 같은 말들이요. 어떻게보면 인생의 꿀팁으로 가득 찬, 디테일이 살아있는 조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매순간이 가르침의 연속이고, 나누는 이야기들마다 꿀팁들로 범벅된 꿀단지라면 마냥 달게만 느껴질까요? 그렇게 저는 잔소리로부터 해방을 꿈꿨고, 성인이 되어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은 오래가지 못했는데요. 잔소리를 업으로 하는 열림터 야간활동가가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잔소리를 업으로 하는 야간활동가 야간활동가..
또우리가 홈파티에 초대를 했다. 워낙 똑소리 나고 자기 관리를 잘하는 친구라 과연 뀨(구구)홈은 어떨까 기대가 되었다. 또우리의 홈으로의 초대는 처음이라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선물은 뭐로 준비할까 고민을 하다가 취향을 물어보고 내 마음에 만족한 선물을 들고 구구의 집에 도착하였다. 음식을 준비하며 집은 평소와 같이 늘어져 있다며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었다. 구구의 집은 생각보다 멋졌다. 구구 또래들이 부러워할 거실, 침실. 옷 방. 냉장고 등 가전이 자리하고 있는 작은 방까지 아늑한 홈이었다. 거실의 TV화면에는 파티에 어울리는 영상과 재즈 음악까지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또 다른 초대 손님은 같은 시기 열림터에서 함께 생활했던 또우리 율이다. 장염 때문에 지하철에서 화장실 들렀다 오느라 늦는다고 한다..
열림터의 거실에는 주인을 잃은 물건이 많습니다. 다 마신 음료수병뜨개질 실타래알록달록 종이접기 작품먹다 만 떡볶이 그릇곡소리 내며 하는 학습지… 앗 이건 이름이 쓰여 있네요!컵은 5, 6, 7…아무래도 생활인의 입은 하나는 아닌가 봐요. 주인 찾으러 출동했지만 쉽지 않습니다. 이거 제 것 아니에요~저 방금 들어왔어요ㅠㅠ저는 이거 안 해요!이거 땡땡이가 했을걸요?네? 저 아니에요~저도 아닌데요! 억울한 자만이 가득한 열림터. 아무래도 낙타 몰래 입소한 생활인이 있나봅니다. “땡땡이 아까 떡볶이 먹지 않았어요?” “어…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먹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든 물건의 주인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떡볶이 그릇 주인의 기억을 되찾았으니..
열림터 활동을 하다보면 생활인들에게 종종 선물을 받기도 합니다. 자기 명찰을 주기도 하고요, 증명사진 잘 나왔다고 한 장 선물해주기도 하구요, 이런 거 좋아할 거 같다며 물건을 사오기도 하고, 그럴듯한 카페를 찾았다며 커피를 사주겠다고 막 지갑을 꺼내기도 합니다. 막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이 선물을 받아도 되는건지, 극구 고사해야 하는지 정말 헷갈렸어요. 자기 쓸 용돈도 부족할텐데! 내가 이 선물을 받아도 되는건지 미안했거든요. 그리고 선물을 받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막 괜히 깊이 고민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받습니다! (물론 너무 비싼 걸 사오거나... 사과의 의미로 선물을 줄 때는 받지 않아요.) 주기만 하고 받기만 하는 관계보다, 주고 받는 관계가 더 건강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선물은 ..
"정확히 7시 반이에요, 쌤" 아침 일찍 깨워달라던 00이의 부탁에 긴장해서 3시 반부터 두시간 간격으로 잠에서 깼다. 7시 반, 칼같이 00이의 방으로 달려가 00이를 깨웠다. "00아 ~~~~ 일어나~~~~~!!" 웬일인지 00은 누워서 핸드폰을 하고 있었고 다시금 눈을 감더니 ‘8시에 깨워주세요. 이번엔 진짜에요.’했다. 8시가 마지막 알람시계 노릇이라는 엄포를 놓고 숙직방에 드러누웠다. 잠에 들려는 찰나 다시금 울리는 핸드폰 알람, 8시였다. 어기적어기적 다시 00의 방으로 내려갔다. 어라 내가 이장면을 꿈에서 봤던가. 아 아까도 내가 00이를 깨우러 갔더랬지 맞다. 감기는 눈을 번쩍 뜨고 00방의 문을 두드렸다. “8시다~~~~!!!!!!!!!!!!” 일어났다고 소리치는 00. 얼른 씻자고 00..
어느 날 전기 밥솥이 망가졌다. 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활동가가 인식한 것은 전기 밥솥으로 밥을 하면 빨리 밥의 색깔이 누렇게 변하고... 먹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밥을 하더라도 생활인들이 잘 먹지 않는 경우가 매번 발생했다. 활동가는 대책회의를 하였다. “생활인들이 밥을 잘 먹지 않아요.” “밥의 상태가 빨리 변해서 금방 색이 변하고 딱딱해져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책회의 결과는 밥이 빨리 상하므로 밥을 하고 난 후 24시간 지난 밥은 냉동하고 그 밥은 볶음밥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망가진 전기밥솥이므로 밥의 상태는 점점 안좋아졌고, 다시 회의한 결과는 패킹이 노후된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패킹을 바꾸기로 하였다. 패킹을 바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어서 활동가 2명이 씨..
12시가 넘은 시각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생활인이 있습니다. 온다고 한지도 한참 지났는데... 그래도 연락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궁금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여 골목길을 어슬렁거려 봅니다. 코로나 시국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가끔 멀리서 지나가는 사람의 발소리에 몸과 마음이 얼음이 됩니다. 내 집 앞에 서 있는데... 평소 무서움을 많이 타던 사람도 아닌데... TV를 너무 많이 본 것인가? 세상이 무섭게 변한 것일까? 나의 걱정이 늘어난 것일까? 생활인들은 열림터에 와서 생활이 안정되었고 편안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열림터로 귀가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꾸 잔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는 열림터에서 계속 지낼 수 없게 될까봐 걱정도 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