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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사는 이야기/숙직 일기 (30)
열림터
열림터는 생활인들 모두 생활패턴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래서 저녁식사 외에는 냉장고나 팬트리에 있는 식재료로 각자 끼니와 간식을 챙겨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각자 먹고싶은 음식들을 냉장고 보드에 적어두면 활동가가 주문을 해서 곳간을 가득 채워둡니다. 하지만 아무리 산해진미가 가득 채워져 있어도 생활인들은 “먹을 게 없어요”를 외치며 냉장고 문을 닫습니다. (대체 왜인가요? 냉장고 안에 미역국도 있고, 닭볶음탕도 있고, 갈비도 있단 말이에요. 샐러드, 멸치볶음, 김치도 있어요. 근데 왜 먹을 게 없다는 거죠? 엉엉. 활동가들은 항상 이 풀리지 않는 숙제로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그렇게 열림터 부엌을 벗어난 생활인들은 마라탕이나 매운떡볶이 같은 자극적인 메뉴로 외식을 많이 하고, 커피나 빵, 과자같은 부식만..
열림터에서는 격월로 화재예방교육과 생활교육이 진행됩니다. 지난 2월엔 화재예방교육을 하면서, 만약 열림터에서 불이 난다면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소화기와 소화전, 완강기는 어디에 있는지 등을 함께 확인했어요. 만에 하나라도 불이 나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어디서든 불이 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안전하게 대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교육을 준비하고 진행했답니다. 3월의 생활교육 주제는 "설거지 꿀팁"이었어요. 열림터에서는 각자 자신의 설거지를 하고, 공동으로 사용된 주방기구 설거지와 주변 정리는 그날의 저녁 당번이 합니다. 음식쓰레기를 버리고, 가스렌지 주변을 닦는 등의 청소는 일주일에 두 번, 전체 청소 시간에 주방을 담당한 사람이 하고요. 설거지를 생활교육 주제로 정한 건, 각..
천둥 번개가 요란한 새벽, 열림이들의 꿈자리는… 천둥 번개가 하늘을 가르는 새벽,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지금 열림이들의 꿈자리는 안녕할까?”잠들기 전, “오늘은 악몽 없이 아침이 밝았으면…” 하고 조용히 바라는 열림이들.열림이들 하루는 ‘투쟁’이고 ‘견딤’입니다. 각자 가슴에 돌덩이 하나씩 얹고, 가라앉지 않으려 애쓰며 하루를 버팁니다. 때로는 억지로, 때로는 자기비하로, 혼란스럽고 무너질 듯한 감정을 안고 살아갑니다.쉼터에 오기로 결심한 그 순간, 그 마음은 어땠을까요? 무엇을 기대하고, 어떤 두려움을 안고 문을 두드렸을까요.열림터에서의 생활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사회와 사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기대는 어쩌면 활동가들의 ..
오늘은 21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일이다. 이 귀한 휴일, 나는 숙직이다. 6개월 전 그날도 숙직이었다. 생활인 A는 그날을 기억하며 내게 말했다. "그때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했다고 제가 말했는데, 쌤이 안 믿었잖아요?" 그랬다. 2024년에 계엄이라니,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A는 계엄 후 진행되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해주었고, 나는 그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듣기만 하다가 결국 스마트폰을 열었다. 활동가들 메신저방에 계엄 속보들이 속속 올라왔고, 몇몇 활동가들은 이미 국회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내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믿어지지가 않았다.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열림터 거실 TV를 켰다. 아버지는 항상 진짜 큰일이 나면 일단 TV를 틀어보라 하셨다. TV..
메리 크리스마스~ 🎄🧡 크리스마스네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크리스마스 당일입니다.저는 크리스마스를 좋아합니다.겨울을 온통 긴 크리스마스라고 생각할 정도로요.근데 어쩐 일인지 열림터에서 일을 하고 크리스마스 숙직만 벌써 3번째입니다.집에서 아직 잠들어 있는 동거인과 반려견에게는 아침 일찍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하고아침 일찍 출근길에 나섰습니다.아쉽지만 오히려 좋아- 정신으로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열림이들과 즐겁게 보낼지 머리를 굴려봅니다. 일단 미리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포장합니다.얇은 잠옷만 입고 돌아댕기며 춥다고 하는 열림이들에게 따수운 누빔 잠옷을 준비했습니다.두꺼워진 잠옷의 두께만큼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길,좋은 꿈만 꾸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요.심심잡화점에서 주신 귀여운 ..
여러분은 어떤 재미로 사시나요? 먹는 재미로 사시는 분~ 열림터는 먹는 데에 진심인 사람들이 많답니다. 먹는 재미가 사는 재미로 이어지는 거 아닐까 생각해보아요. 열림터의 냉장고 보드에는 항상 먹고 싶은 식재료로 가득 채워져 있어요. 함께 식사하는 저녁 식사 당번도 생활인과 활동가가 돌아가며 하는데요, 열림이들과 먹은 요리들을 소개해 드릴게요. 고추참치비빔밥x장조림x김치찌개라는 천재적인 조합! 쏟아지는 빈 통조림에 급히 준비한 티가 나지만 마요네즈까지 곁들여 그릇을 싹싹 비우게 해준 생활인 A의 작품입니다. 생활인 B는 수육도 할 줄 안답니다! 레시피를 보고 우왕좌왕하던 모습을 본 생활인 C가 도움을 주어 부드러운 작품을 선보여주었습니다. 열림이들은 과일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과일을 깎는 것은 귀찮기도 ..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될 줄 몰랐습니다. 숙직 날이면 내가 교원자격증을 땄던가? 싶을 정도로 "쌤~"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한 번도 선생님으로 부르라 한 적 없지만,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우리 관계에 이 호칭... 괜찮은걸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여간, 숙직하게 되면 하루 종일 생활을 함께하니 잔소리와 지시 사이의 어떤 말을 평소보다 더하게 됩니다. "쌤"으로 불리는 판이라 잔소리로 들릴까봐 '말할까, 말까?' 몇 번 되감아 보고요. 그럼에도 연달아 말문이 터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미묘하게 불편한 그 상황을 웃음바다로 물들인 이가 있습니다. #1. A: 낙타 쌤 파스타 소스 병 좀 따주세요. 낙: 됐다! A: 와... B, 어떻게 생각해? B: 강하다고 생각해. ..
저는 구글 캘린더를 애용하는 MBTI(성격유형검사)에서 J(계획형)인간입니다. 어릴 때부터, 기억나는 한 9살 정도부터 다이어리를 쓰면서 일정 쓰거나 계획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만 변덕이 심한지라 일정이 자주 변경되어 지우고 다시 쓰기가 용이한 것을 찾다 보니 구글 캘린더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00월 00일 토요일, 열림터에 들어오고 처음 하는 주말 숙직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 전날 하필 회식이 있는 날입니다. 상담소 전체 회식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어서 놀기 좋아하는 저는 오래오래 놀고 싶었지만, 이성을 잡고 구글 캘린더에 이렇게 작성해봅니다. ‘내일 숙직을 위해 일찍 귀가’ 그리고 그 시간을 오후 7시로 지정해봅니다. 그냥 칼퇴근한 것이나 다름없는 회식 날이었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뒤로 하..
잔소리, 좋아하시나요?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싶지만, 저는 잔소리가 정말이지 싫은 사람입니다. 원가정에서 수많은 잔소리를 듣고 자랐거든요. 예컨대, 걸음걸이 하나하나에서부터 “등을 쫙 펴고 걸어라”, “머리는 뿌리부터 말리고 뻗치지 않게 안쪽으로 말아서 두어라” 와 같은 말들이요. 어떻게보면 인생의 꿀팁으로 가득 찬, 디테일이 살아있는 조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매순간이 가르침의 연속이고, 나누는 이야기들마다 꿀팁들로 범벅된 꿀단지라면 마냥 달게만 느껴질까요? 그렇게 저는 잔소리로부터 해방을 꿈꿨고, 성인이 되어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은 오래가지 못했는데요. 잔소리를 업으로 하는 열림터 야간활동가가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잔소리를 업으로 하는 야간활동가 야간..
또우리가 홈파티에 초대를 했다. 워낙 똑소리 나고 자기 관리를 잘하는 친구라 과연 뀨(구구)홈은 어떨까 기대가 되었다. 또우리의 홈으로의 초대는 처음이라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선물은 뭐로 준비할까 고민을 하다가 취향을 물어보고 내 마음에 만족한 선물을 들고 구구의 집에 도착하였다. 음식을 준비하며 집은 평소와 같이 늘어져 있다며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었다. 구구의 집은 생각보다 멋졌다. 구구 또래들이 부러워할 거실, 침실. 옷 방. 냉장고 등 가전이 자리하고 있는 작은 방까지 아늑한 홈이었다. 거실의 TV화면에는 파티에 어울리는 영상과 재즈 음악까지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또 다른 초대 손님은 같은 시기 열림터에서 함께 생활했던 또우리 율이다. 장염 때문에 지하철에서 화장실 들렀다 오느라 늦는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