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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숙직 일기

어린이날 맞이 숙직일기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 2019. 5. 7. 16:17

어린이날 의의 어쩌구


어린이였을 때 부모 손에 이끌려 어린이날 무료 불소 도포 행사에 참여했다. 어린이날마다.. 나를 위한 날인데 왜 이렇게 맛도 없고 재미도 없는 일을 해야 하는걸까 항상 불만이었다. 어린이날이란 도대체 뭘까!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 어린이날이 아동인권을 선언하는 날로써 처음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대 받고 존중받지 못하던 ‘아이’들에게 ‘어린 이’라는 이름을 붙여 존중과 환대를 요구하는 운동이었던 어린이날은, 점차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는 ‘특별한’ 하루로 변화했다. 

 

나의 부모가 어린이날을 맞아 내 치아의 건강을 살펴준 것이 나빴다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날에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좋잖아) 하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날에 어린 이들에게 박탈된 경제권과 주거권, 참정권을 한 번쯤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어린 이들의 인권이 존중되는 세상은 열림터에게도 중요하다. 친족성폭력피해생존자이거나, 성폭력 피해 치유에 가족이 지지를 보내지 않는 사람들(주로 청소년-후기청소년)이 열림터에서 살아간다. 생활인들은 열림터에서 일시적이나마 공동체를 꾸리고, 자신을 돌보고, 돌봄을 받고, 자립을 준비한다. 사회가 어린 이들에게 더 많은 곁을 내어주지 않기 때문에 이 과정은 더 어려워지기도 한다. 어린이는 꼭 가족 안에 있어야 한다는 믿음은 가정 밖의 청소년들이 자립하기 어렵게 만들며, 폭력적인 가족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게 한다. 어린이, 아동청소년의 인권은 성폭력 없는 세상과도 맞닿아 있다. 


어린이날에 열림터는!


어린이날의 운동적 의의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한 것은 이 숙직일기가 어린이날 기념 일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어린이날에 열림터는 무엇을 했을까! 열림터 식구들과 어린이날 숙직자는 열심히 놀았다! 항상 틀에 맞춰 ‘생산적’인 학생이자 국민으로 살아가길 요구하는 이때, 생산성을 고려하지 않고 열심히 노는 것도 어린이날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을까. (하지만 토리가 EBS 강좌를 제 때 보았으면 좋겠다) 

노는 것도 참 알차게 놀았는데, 아침을 먹은 후, 할리갈리 카드로 보는 타로점 시간이 있었다.

할리갈리로 보는 야매타로점


타로를 해석해보자.. 마미와 내 첫 번째 카드는 딸기 5개, 대추(혹은 라임, 혹은 올리브) 5개로 풍성함을 나타낸다. 이것은 바로 아침을 풍성하게 먹을 것이라는 의미! 두 번째, 세 번째 카드에는 과일이 참 빈약하다. 이것은 점심과 저녁을 빈약하게 먹을 것이란 미래를 예지하는 것이며.. 세 번째, 네 번째 카드는 어찌저찌 해석하니 마미 혼자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걸을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다들 반발하며 앉아있는 와중에 타로점 리더 토리가 덧붙였다. 

 

“운명은 바꾸는 거예요.” 

그리고 운명은 바뀌었다. 아침뿐만 아니라 점심, 저녁, 간식까지 풍성하게 먹었기 때문이다. 또 타로에 의하면 많이 걸었어야 했을 마미는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티비로 애니 보는 법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하루는 나와 함께 텃밭에 물을 주고 츄러스 믹스를 사러 마트에 다녀왔고, 은서와 보라는 각자 즐거운 일을 하기 위해 외출을 했다. 

가족회의를 하며 열림터의 '어린 이'들은 아이스크림과 단 과자를 먹었다. 열림터 숙직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열림터 식구들은 참 재밌다. 그 구체적인 재미에 대해서는 다른 숙직일기에서 써보도록 노력하겠다. 어린이날 기념 숙직일기니까 어린 날 쓰던 일기처럼 숙직일기를 교훈적으로 끝맺어야지. 어린 사람들이 더 자기 목소리를 많이 낼 수 있고, 양껏 돌봄 받고,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토리 말대로 운명은 바꾸는 거니까... 

끄읕

 

이 글은 열림터 활동가 수수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