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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사는 이야기/숙직 일기 (23)
열림터

취침시간 5분전 폭풍양치질에 고양이세수를 하고 헐레벌덕 각자의 침대로 향한다. 코로나19로 세상도 일찍 잠든다. 여느때 같으면 지금쯤 취객의 고함소리와 쓰레기 수거하는 소리가 요란했을 텐데 오늘은 가끔씩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와 뜨거운 열기만이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각자의 침대에서 잠은 잘 들었을지? 무슨 생각을 하며 잠을 청하고 있을지를 생각해본다. 잘 살고 있는 가해자를 보며 화내고,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는 가족에게 섭섭하고, 내맘처럼 돌아가지 않는 세상에 힘든 하루를 보낸 친구들... 내집이 아니라 맘도 편하지도 않을테고 ... 어떻게 하면 있는 동안이라도 편히 긴장하지 않고 지내게 할 수 있을까 ? 몇몇 또우리(퇴소자)들이 생각난다. 어쩌다 열림터를 방문할때면 생활인들용 과자나 여행지에서 산 특산..

열림터 거실의 한쪽 면에는 하얗고 제법 큰 책장이 있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책, 후원으로 보내온 책, 누군가 샀지만 다 같이 읽고 싶어서 꽂아둔 책, 읽고 싶다고 요청한 책등등이 빽빽하게 꽂혀 있다. 소설, 지침서, 교재, 만화책...분류도 되어 있지 않은 되는대로 보고 반납하기(?)를 반복하여 무척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이점이 있는 책장. 숙직할 때 가끔 여유가 생기면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골라서 보곤 했다. 어느 날 생활인에게 요즘엔 열림터에 읽을만한 책이 없다고 투덜댔다. 문화생활비로 한아름 사서 잘 정리해둔 책들 중에 하나를 골라주며 읽어보라고 권했다. 숙직하면서 밤새도록 책을 다 읽은 후에 재미있었다면서 돌려주었다. 우리의 미묘하게 다른 점도 있었지만 비슷한 취향이었던 것 같다. 생활인이 퇴소한..

Y: 요즘 초딩들은 다 피방 가 있어요. 밖에 나가 놀아야지! 낙: 피방..? 피씨방? Y: 피씨방! 낙: Y는 초등학교 졸업한지 얼마 안 됐는데도 차이가 나요? N: ‘라떼’네! Y: (라떼대신 초코렛우유를 마신다) 낙: ‘라떼’다! 그럼 Y은 초등학생 때 뭐했어요? Y: 저는 초딩 때 놀이터에서 놀았죠! 요즘 초딩들 무서워요~ 고대 이집트 점토판에 새겨있다던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버릇이 없다'가 생각나는 Y의 ‘라떼’에 ‘Y도 청소년이면서’라며 웃은 저도 별다를 것 없는 ‘라떼’더라고요? 깨달음을 준 Y의 ‘라떼’에 심심한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놀이터보다 피씨방을 즐겼던 낙타 ‘라떼’와 그 반대인 Y ’라떼’ 세상에는 다양한 세대 차이, ‘라떼는 말이야’가 있답니다! 한 번 더 고민하고 말해야겠..

돌봄은 아무나 하나 목요일, 작은 청소를 진행했다. 청소 구역 두 군데를 1시간 안에 해야 하여 마음이 바빠 생활인들이 청소를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볼 새가 없었다. “쌤, 청소 다했어요!” 하고 쾌재를 부르며 Z가 왔다. “배가 등딱지에 달라붙을 것 같아요!”하기에 얼른 뭐라도 먹으라고 하고는 쓰레기봉투와 분리수거 더미를 가지고 바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부엌은 언뜻 보기에도 H가 말끔히 청소를, 정리정돈을 해놓은 듯 보였다. 쓰레기를 버리고 오니, H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Z는 깨끗한 부엌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요리하고 있었다. 유투브에서 유행하는 음식이라고 하는데 냄새가 그럴싸했다. “쌤, 이것도 몰라요?”, “저것도 모르죠?”, “쌤 뭐 알아요?” 하고 활동가를 늙은이 취급하는데 맛들린 Z보다 새..

“오늘의 열림터 날씨입니다” 이런 일기예보가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숙직하는 날 미리 듣고 싶거든요. 일기예보를 들어도 뭐 크게 달라질 건 없지만, 그래도 우산도 준비하고, 아님 바람 맞을 각오도 하고, 잔뜩 찌푸린 공기를 맞닥뜨릴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할 수 있다면 조금 낫지 않을까요? 열림터의 기분도 꼭 날씨 같아서 ‘대체로 흐림’, ‘맑지만 가끔 구름’,‘ 초속이 각각 다른 바람’, ‘간간이 비’, 어느 때는 잔뜩 흐린 채로 공기 조차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어느 때는 붕붕 뜨는 기운에 왠지 불안해질 때도 있지요. 아, 그런데 생각해보니 올해의 주된 기운은 불안함인 것 같아요. 이런 날도 저런 날도 늘 불안한 기운이 밑바닥에 있는 것 같습니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아마도 코로나..

저녁 내내 거실 한 쪽에 무심하게 놓여있던 박스들이 열릴 때 마다 생활인들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야간활동가도 처음 보는, 귀엽고 신기한 곰돌이머리 모양을 한 전구, 작고 귀여운 산타들, 재료와 색상이 다양한 장식볼과 소품, 여러 종류의 리스, 촛불 대신 작은 전구가 반짝이는 향초, 두 개의 디퓨저... 예상 밖의 디퓨저 등장에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게 더 낫다. 재료들을 모두 꺼내놓자 생활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각자의 역할을 해낸다. 두 명의 언니들은 힘든 일을 자처하며 의자 위에 올라가서 높은 곳에 곰돌이 전구들을 붙이기 시작한다. 이전에 트리 장식을 많이 해봤다는 청소년 생활인은 바닥에 앉아 장식볼을 트리에 매달며 실력을 뽐낸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

코로나19로 인한 긴 움츠림이 있었지만, 여름을 맞아 나들이를 가기로 하였다. 활동가들이 생각한 사람의 인적이 한산하고 여유로운 목적지와는 다르게 생활인들이 가고 싶다고 소리높여 이야기한 곳은 ‘놀이동산’ 이었다. 개인일정이 겹치지는 않은지 수요조사를 하는 동안에 아무도 개인일정이 없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기 전에도 자주 나들이의 설렘을 표현하고 당일 아침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습관도 버린 채 일찍 일어나서 풀메이크업, 꽃단장, 아침 먹기를 모두 끝내는 등의 완벽한 준비를 마치고 초조하게 기다리는 무언의 압박을 표현하는 바람에 10분 일찍 출발하게 되었다. 전철을 타고 도착한 놀이동산에 들어서자마자 뜀박질로 첫 번째로 탄 놀이기구는 바이킹이었다……. 귀가 후 발열 체크를 할 때 “놀이동산 ..

저는 예전부터 식구라는 말을 좋아했어요. 가족도 아니고, 친구(라고 하기엔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사회에서 아무도 우리를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고)도 아니고, 하지만 그래도 정이 든 사람들끼리 살고 있을 때.. 서로를 '식구'라고 표현하면 '오, 나 정말 알맞은 단어를 썼구나' 란 기분이 드는 것 같아요. 식구는 한 집에서 살며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거든요. 생활을 함께 하는 사람을 표현할 때 딱 좋은 표현 아니겠어요? 아무튼 열림터 사람들은 서로의 '식구'입니다. 우리는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이에요. 밥은 때때로 맛있기도 하고, 때때로는 망하기도 하고, 보통은 그냥 맨날 먹는 밥 맛이죠. 그런데 몇 달 전... 저는 열림터에서 정말 너무도 굉장한 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름하여 버섯탕수육..

12월의 A에 이어 2월에도 H의 합격소식이 있었다. 학원에서 1등으로 실기시험에 합격하였다는 소식을 카톡으로 빠르게 알려주었는데, 1등이라 주말 숙제가 없다며 으쓱한 표정을 짓는다. "시험 좀 합격했다고 너무 자랑하는 것 같네요^^;" 쑥스러워하며 황급히 말을 주워담아보지만 간절히 바라온 일이라 기쁨을 숨기기 어려운가보다. 자랑하면 뭐 어때요! 생활인은 활동가와 함께 자립을 위해 받을 수 있는 지원을 탐색하고 하고싶은 일을 찾아가며 주체적인 삶을 위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피해를 마주하며 법적절차를 밟아갈때면 숨이 차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일상을 꾸려가려는 의지는 단단해보인다. 오늘같은 소식이 있을때면 '활동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한걸음 다가간 기분이 든다. 작은 변화가 모여 ..

3년 전의 일이다. 새내기 야간 활동가였던 나에게 귀여운 막내인 그는 말했다. “샘^^. 무릎에 앉아도 되나요?” “.......아니. 잠깐만(당황)...... 그러면 나 무릎 아픈데” “안되나요? (시무룩)” “누구 무릎에 앉아본 적이 있어?” “할머니 무릎에 항상 앉았었어요.” “할머니 건강하시구나. 그렇지만 선생님은 아파. 너의 절반만한 꼬마애도 무릎이 아프던걸” “안 아프게 살짝 앉을께요.*^^*” “그럼... 정말 살살 앉아야 해.” 나의 사정을 봐줘서 최대한 무게를 줄인 그는 내 다리에 앉았었다. 그가 내 무릎에 앉아 있었던 짧은 시간은 그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덕분에 내 무릎은 아직 건재해. 요즘엔 어떻게 지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