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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터
이 글은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생활인 은수가 만든 책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아빠는 내게 무척이나 친절했다. 너무나 친절해서 죽이고 싶었다. 내방에 항상 들어와 가슴을 만지고 나의 성기를 거칠게 만져 주었다. 그리고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가 여태까지 본 것 중에 가장 환한 웃음 이였다.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아빠는 내 몸을 소중하게 여겨주었구나!’ 라고. 아빠는 내 몸을 누군가가 볼까 걱정하곤 했다. 내 몸은 아빠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문득 예전에 내가 아끼던 인형이 생각났다. 벗기고 싶으면 벗겼고, 만지고 싶으면 만지는. 그 인형이 지금 아빠 앞에 천장을 보며 누워 있다. 아빠는 말했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너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렇단다.” 너무나 나를 사랑한 나머지 아..
이 글은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생활인 은수가 만든 책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야! 그만 쳐 자!” 눈을 떴다. 아빠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며 일어난다. 현실인가 보다. 꿈속에서 동생과 풍선을 타고 놀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아빠의 고함이 더욱 크게 들려온다. 어제 두들겨 맞은 탓인지 온몸에 감각이 없는 듯하다. 이불에서 겨우 나온 다음, 화장실로 갔다. 아빠는 TV를 보며 웃고 있다. 눈이 마주칠까봐 눈을 내리깔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거울을 본다. 반쯤 풀린 눈에 입꼬리가 축 쳐져 있다. 애써 웃어보려고 입꼬리를 손으로 올려본다. 나는 거실로 나가고 싶지 않아 화장실 문고리만 하염없이 보고 있다. “은수야 밥 먹어” 엄마가..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그렇게 꿈을 꾼다. - 북콘서트를 보고 나서...... 한별 내가 처음 성폭력을 당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 때는 성폭력이 뭔지 몰랐고, 내가 겪고 있는 것을 잘 몰랐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학교 동아리의 아는 언니에게 처음 이야기를 했고, 아는 동생의 이모인 학교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재혼을 하셨다. 우리 가정은 잘 사는 편은 아니었지만 화목했고, 살 것은 사고 외식도 자주 했다. 가족들과 배드민턴을 치기도 하고 놀러가기도 하는 단란한 가정이었다. 성폭력을 당하기 전까지는 괜찮은 가정이었고, 또 성폭력 이 시작된 후에도 그것 이외에는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아버지가 용돈도 잘 주시고 항상 내 편이 되어 ..
열림터에서 2년을 보내고 돌고래 그러게 2년을 살았는데, 지난 2년의 시간동안 뭘 했을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짐을 싸고 새집으로 출발을 기다리는 전날에도 잠이 안 왔다. 아침이 돼서 조화 쌤이랑 공명 쌤이랑 여름 쌤이랑 나랑 쌤이랑 다 같이 짐을 차에 실어 넣을 때도 꿈꾸는 것 같았다. 열림터에서 뼈를 묻겠다며 장난치곤 했는데, 정해진 입소 기간 2년이 흘러가고 망원에 집을 구해 독립 준비를 했다. 열림터에서 지낼 때는, 11시 넘으면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데, 이제는 어느 시간에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독립을 하니, 피곤해서 집에 일찍 일찍 들어간다. 열림터 2년을 되돌아보면, 참 많은 일이 있었다. 2년 동안 고소를 진행했고, 2년 동안 편입 준비도 해보고, ..
-상담소에서 자기방어훈련 관련한 사업을 담당했던 활동가로써 앞으로 어떻게하면 이를 더욱 활발하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 저는 처음에는 할 사람이 없는 거구나 하고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생각을 해 보니까 다른 몸 되기라든지 자기방어가 그렇게 어려운 개념은 아닌데, 누구든 이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그게 못할 게 아니다는 생각이 요즘엔 좀 들더라구요. 할 만한 사람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 하고 이런 게 아니라, 누구라도 자기방어라는 취지 안에서 기획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왠지 운동도 잘 해야 할 것 같고 힘도 쎄야 할 것 같고 하는 부담감이 있지요) 제일 나대는 사람이 하면 돼요. “당신은 자기방어자입니다” 그것의 동급이 개인적인 견해로는 술 잘 먹는 여자, 그리고..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여성주의 자기방어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 책 발간 사업 담당했던 전 활동가 ‘오매’님을 만나 여성주의 자기 방어와 십대 관련한 우리의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인터뷰를 요청하였습니다. 부슬부슬 비내리는 날, 맛있는 빵 사들고 은평구에 위치한 신나는 애프터 센터를 찾아갔습니다. 주택단지 사이에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는 ‘새 건물’이 눈에 띄네요. 올 해 신축했다고 들었는데 시설 먼저 살펴보세요.! 공간이 넓고, 종류별로 분류 되어있어 깔끔하더라구요. 대관은 무료라는 말에 열림터 친구들과 프로그램 하러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딱 드네요! 1층 인문학도서관 구석에 자리 잡은 우리는 나랑이 직접 말려온 목련차와 빵을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신나는 애프터 센터에 대한 소개 먼저 해 ..
말하기대회 10주년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행사인 북콘서트 가 지난 3월 28일 홍대입구 근처의 까페에서 열렸습니다. 오후부터 하늘이 흐려지더니 급기야 행사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혹여 많은 분들이 참석을 못하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며 참여자 분들을 기다렸답니다. 온라인으로 접수를 시작하면서 북콘서트에 대해 많은 분들이 가지고 있는 기대감을 많이 느꼈는데, 실제로 작가와 독자가 만났을 때 어떤 대화들이 오갈 지 준비하면서도 많이 궁금했는데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참여자 분들께서 접수를 하고 계신데요, 사전에 공지한 데로 입장하면서 핸드폰을 포함한 전자기기는 보관함에 맡겨 두고 행사 끝나고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이 방식은 저자와 참여자 모두 안전..
난 아주 어리고 아직 살아가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할 나이쯤 열림터에 들어왔다. 쉼터라는 곳에서 처음 살게 되었다. 부담이 됐다.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안 생기면 어떡하지? 설레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내가 제일 막내이기 때문에 혹시 무시하고 많이 못살게 굴진 않을까 걱정이 됐다. 다행히도 쉼터 언니들은 나를 상냥하게 반겨주었다. ”선생님”이라고 하면. 딱딱하고 또래 애들이랑 잘 안 맞을 것 같은데 선생님들이랑 친해지면서 많은 것도 배우며 더 가까워지니까 오히려 덕이 되는 부분이 많았다. 몸의 거리는 열림터 식구들과 더 친하지만, 마음의 거리는 선생님들하고 더 친했다.^^ 선생님들도 딱딱하고 장엄한 분위기가 아니고 오히려 우리 수준에 맞추려고 노력하시고 재미있는 분들도 많아서 오히려 열림터 애들보다 ..
"어? 생각했던 것보다 예뻐서 맘에 들어요." "글쓰기 가르치는 샘이라 해서 청바지에 티셔츠, 머리도 대충......뭐 암튼 그럴 줄 알았거든요." "나이도 많을 줄 알았는데, 상상했던 샘이 아니어서 좋아요." 치유하는 글쓰기 첫날, 나는 열림터 친구들의 칭찬에 어리둥절했지만, ‘귀여운 것들, 요런 게 먹히는구나, 이쁘게 보이고 싶었는데 다행이다.’ 그래, 열림터 친구들 앞에 나는 산뜻하게 등장하고 싶었다. 한때 열림터에 살았던 언니이자 열림터 활동가이기도 했던 그들과 같은 상처를 지닌 나. 지금은 그 상처를 책으로 써낸 사람으로서 나는 우중충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통해 자신들의 미래를 상상할 수도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치유하는 글쓰기 시간을 기다려지고, 신나는 치유의 놀이..
처음 수연의 글을 접했던 것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식지 를 통해서였다. 그것을 알려주셨던 분은 당시 나를 상담해주시던 상담소 선생님이었다. 읽어보면 도움이 많이 될 거라며 상담소 소식지 전부를 찾아서 챙겨주셨다. 그렇게 읽게 된 수연의 글을 통해 나는 큰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그런데 부끄럽지만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 그때 느꼈던 또 다른 감정이 있었는데 세상에 나보다 더한 고통을 겪은 사람도 있다는 알 수 없는 안도감(?)같은 것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들의 순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유치한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지금은 얼굴이 다 화끈거리지만 그 당시엔 정말 그랬다. 너무나 크고 무겁던 나의 고통을 잠시나마 가볍게 생각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제와 이런 부끄러운 고백을 하는 건 수연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