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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터
성폭력보다 무서운 것은 가족의 해체? ‘친족성폭력’ 이야기③ 딸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엄마 여름 아빠가 특별히 예뻐하는 딸 지우(가명)는 세 자매 중 장녀이다.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인 여섯 살 때부터 아빠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아빠는 지우가 건강하게 잘 크고 있는지 확인하는 거라면서 가끔 다른 가족들 모르게 따로 불러 지우의 몸을 살펴보거나 만졌고, 아빠 자신의 몸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빠는 지우를 사랑해주는 것이라 말했다. 지우는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어 무섭기도 했지만, 그런 행동 다음에는 항상 자신이 갖고 싶은 것들을 사주는 아빠를 보며 자신이 사랑 받고 있는 것이라 믿었다. 7살이 된 어느 날, 지우는 엄마에게는 비밀을 만들면 안될 것 같은 생각에 아빠가 자신에게 하는 행동에 대..
가해자는 싸이코패스도, 짐승도 아니다. ‘친족성폭력’ 이야기② 보호자이면서 가해자인 아빠 향심 아빠에 대한 자랑, 어떻게 봐야 할까 열림터에서 일하던 어느 날, 정희의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정희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약 7년 동안 아빠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고, 친한 교회 언니의 도움으로 열림터에 오게 되었다. 당시 정희는 실업계 고등학생이라 전학이 매우 어려웠는데, 담임 선생님이 정희의 피해 사실을 알고 전학 허가가 날 수 있도록 애써주셨다. (실업계 등 사립학교의 경우, 성폭력 피해로 비밀전학을 할 때 교육청의 권유가 있어도 학교장이 거부하면 전학할 수 없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어렵게 전학한 학교인데, 혹시 학교 생활에 문제가 있나 싶었다. 그러나 담임 선생님이 걱정한 건, 학교 생활이..
사람들이 모르는 '친족 성폭력' 이야기 생존자들의 경험과 현실을 이해하기 위하여① 나랑 가해자가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간 정민이 정민(가명)이는 성폭력 피해자 쉼터에서 살다가 작년 초 퇴소하였다. 쉼터에 거주할 수 있는 기간 2년을 꽉 채운 정민이는 퇴소 후 고시원에서 1년을 살았지만, 한 달에 100만원도 채 못 버는 PC방 아르바이트만으로 40만원이 넘는 고시원 비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돈을 모을 수도 없었다. 오빠는 계속 집으로 들어오라고 성화였다. 하지만 정민이는 망설여졌다. 가해자는 아빠였다. 정민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추행을 시작했다.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4학년 때부터 집안일을 해 온 정민이는, 아빠가 자신을 추행한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오빠마저 대학을 다니러 지방..
-규칙이 일상생활이랑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스스로 뒷정리 하는 게 있는데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거든요. 다른 규칙은 꼭 필요하다고 보는데 귀가 시간만큼은 저도 고민이 많이 돼요. 귀가 시간 때문에 혼낼 때에도 내가 꼰대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고요. 한 쉼터는 귀가 시간이라고 정해 놓은 게 없고, 나갈 때마다 어디 간다고 얘기하고 어딜 가서 누굴 만나고 몇 시에 들어올 지 서로 약속을 하는 거에요. 그리고 약속을 했으니까 지키라는 거죠. 근데 공력이 많이 들어가니까 저희는 엄두를 못 내고 있긴 한데, 바람직한 방법이긴 한 것 같아요. : 저도 학창시절이나 대학교 때에 부모님이랑 제일 갈등했던 게 귀가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저의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합리적인 이..
얼마 전 여성신문에서 ‘가출 청소년이 쉼터 대신 모텔 찾는 씁쓸한 현실’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이화여대 여성학과 여성가출청소년 인권실태 현장조사팀에서 가출 청소녀들을 직접 만나셨다는 내용의 기사였는데요, 그 기사에서 쉼터가 모범생 중심으로 돌아가서 가출 청소녀들이 가지 않는다는 내용을 보고 좀 뜨끔! 갑자기 열림터가 잘 운영되고 있는지 고민이 들었고, 그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쉼터 바깥의 청소녀들은 만나본 적이 없어 현장에서 만난 청소녀들에 대해서도 궁금했답니다. 그리하여 현장조사팀에 참여했던 칠월님에게 인터뷰 신청을 했고 흔쾌히 응해주셨습니다. 상담소 모임터로 방문해주셨는데요 활동가들 먹으라며 커피도 직접 볶아 오셨답니다.^^ - 이 연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 이 연구는 국가..
이 글은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생활인 은수가 만든 책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아빠는 내게 무척이나 친절했다. 너무나 친절해서 죽이고 싶었다. 내방에 항상 들어와 가슴을 만지고 나의 성기를 거칠게 만져 주었다. 그리고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가 여태까지 본 것 중에 가장 환한 웃음 이였다.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아빠는 내 몸을 소중하게 여겨주었구나!’ 라고. 아빠는 내 몸을 누군가가 볼까 걱정하곤 했다. 내 몸은 아빠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문득 예전에 내가 아끼던 인형이 생각났다. 벗기고 싶으면 벗겼고, 만지고 싶으면 만지는. 그 인형이 지금 아빠 앞에 천장을 보며 누워 있다. 아빠는 말했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너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렇단다.” 너무나 나를 사랑한 나머지 아..
이 글은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생활인 은수가 만든 책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야! 그만 쳐 자!” 눈을 떴다. 아빠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며 일어난다. 현실인가 보다. 꿈속에서 동생과 풍선을 타고 놀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아빠의 고함이 더욱 크게 들려온다. 어제 두들겨 맞은 탓인지 온몸에 감각이 없는 듯하다. 이불에서 겨우 나온 다음, 화장실로 갔다. 아빠는 TV를 보며 웃고 있다. 눈이 마주칠까봐 눈을 내리깔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거울을 본다. 반쯤 풀린 눈에 입꼬리가 축 쳐져 있다. 애써 웃어보려고 입꼬리를 손으로 올려본다. 나는 거실로 나가고 싶지 않아 화장실 문고리만 하염없이 보고 있다. “은수야 밥 먹어” 엄마가..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그렇게 꿈을 꾼다. - 북콘서트를 보고 나서...... 한별 내가 처음 성폭력을 당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 때는 성폭력이 뭔지 몰랐고, 내가 겪고 있는 것을 잘 몰랐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학교 동아리의 아는 언니에게 처음 이야기를 했고, 아는 동생의 이모인 학교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재혼을 하셨다. 우리 가정은 잘 사는 편은 아니었지만 화목했고, 살 것은 사고 외식도 자주 했다. 가족들과 배드민턴을 치기도 하고 놀러가기도 하는 단란한 가정이었다. 성폭력을 당하기 전까지는 괜찮은 가정이었고, 또 성폭력 이 시작된 후에도 그것 이외에는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아버지가 용돈도 잘 주시고 항상 내 편이 되어 ..
열림터에서 2년을 보내고 돌고래 그러게 2년을 살았는데, 지난 2년의 시간동안 뭘 했을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짐을 싸고 새집으로 출발을 기다리는 전날에도 잠이 안 왔다. 아침이 돼서 조화 쌤이랑 공명 쌤이랑 여름 쌤이랑 나랑 쌤이랑 다 같이 짐을 차에 실어 넣을 때도 꿈꾸는 것 같았다. 열림터에서 뼈를 묻겠다며 장난치곤 했는데, 정해진 입소 기간 2년이 흘러가고 망원에 집을 구해 독립 준비를 했다. 열림터에서 지낼 때는, 11시 넘으면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데, 이제는 어느 시간에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독립을 하니, 피곤해서 집에 일찍 일찍 들어간다. 열림터 2년을 되돌아보면, 참 많은 일이 있었다. 2년 동안 고소를 진행했고, 2년 동안 편입 준비도 해보고, ..
-상담소에서 자기방어훈련 관련한 사업을 담당했던 활동가로써 앞으로 어떻게하면 이를 더욱 활발하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 저는 처음에는 할 사람이 없는 거구나 하고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생각을 해 보니까 다른 몸 되기라든지 자기방어가 그렇게 어려운 개념은 아닌데, 누구든 이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그게 못할 게 아니다는 생각이 요즘엔 좀 들더라구요. 할 만한 사람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 하고 이런 게 아니라, 누구라도 자기방어라는 취지 안에서 기획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왠지 운동도 잘 해야 할 것 같고 힘도 쎄야 할 것 같고 하는 부담감이 있지요) 제일 나대는 사람이 하면 돼요. “당신은 자기방어자입니다” 그것의 동급이 개인적인 견해로는 술 잘 먹는 여자, 그리고..